[이현배] 부엌이 있는 삶 –진안고원의 생활 부엌

부엌이 있는 삶 –진안고원의 생활 부엌

 

 

이현배(손내옹기 옹기장이)

 

“여러분들이 딛고 있는 땅, 그 땅을 이루고 있는 흙. 찰흙을 우리 옹기장이들은 밥이라고 한답니다” (2021,06,09)

2021년, 이 말이 씨가 되어 마령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지역문화유산의 이해와 해석 그리고 창출’을 아홉 번 진행하였다. 손내마을의 옹기점은 그 ‘마/령/평/야’의 흙을 몸흙으로 하고, ‘백/운/청/산’의 나무들을 땔감으로 하여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본질로서의 흙을 찾아가는 여정을 체득하고자 하였다.

지난 봄 농기계수리센터에서 만난 한 어르신께 ‘자네가 청년으로 왔는데 이제는 노년이 되었구먼‘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1993년 4월 5일날 왔다. 살림집 자리를 잡고서 가마 지을 흙을 찾느라 사방군데로 눈을 두게 되었다. 논밭에 작물이 들어가던 때라 흙이 보여도 흙을 움직일 수가 없을 때였다. 그러다가 모내기를 마친 ’마/령/평/야‘의 색감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말을 찾아보니 [사름 : 모를 옮겨 심은 지 4~5일쯤 지나서 모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 파랗게 생기를 띠는 일, 또는 그런 상태]였다. “평지마을 큰애기가 시집을 가면 찰흙 때문에 3년이 되어야 발가락이 펴진다”(박정임1923~2020)는 말도 그 때 배웠다.

그 땅, 그 흙으로 형성된 옹기점에서 일을 꾸렸기에 지난 국도 30호선 확포장공사의 노선이 처음 이야기되었을 때 아찔했다. 농지정리 사업으로 고인돌들이 있던 청동기시대 유적이 훼손되었듯이 ’마/령/평/야’라는 말이 무색해질 것이기에 옹기장이 자격으로 ‘사름‘을 담아보고 싶었다. 다행히 주민분들의 의지로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고 그 ’마/령/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 의미를 찾게 되었다.

용담댐 수몰과 함께 수몰된 진그늘 구석기시대 유적과 갈머리 신석기시대 유적, 유물 등을 통해 용담댐 수몰 20주년도 새겨보았다. 또 분명 ’마/령/평/야‘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도 품고 있을 것이기에 그 땅의 기억을 몸으로도 기억하기를 바라며 자전거 기행과 달빛 기행도 함께 하였다.

전통적으로 옹기몸흙은 도작稻作문화와 함께 한다. 옹기몸흙이 땅그릇 역할을 하여 물을 이용하는 벼농사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진장, 진안고원에서 농경문화의 터전으로 최적이었던 ’마/령/평/야‘가 쌀의 가치 하락과 함께 저평가되고 있어 농(農)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적 삶의 근본마저 아슬아슬하다.

 

 

아홉 번째 프로그램을 [마/령/평/야, 선사시대의 생활 부엌]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 이틀 뒤에는 ’백/운/청/산‘에 들어서는 (가)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 지역연계강화사업에 제안형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 며칠 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이 뉴스가 되면서 그 좋은 말 ‘저녁이 있는 삶’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가 네 번째 출마로 묻히는 것을 보았다. 적확하게 그 말이 십여 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대통령 선거에 유효한 것을 보면 우리의 삶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분명 그 말은 이집 저집에서 밥을 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따순 밥을 먹이기 위해 여기저기서 아이들 부르는 소리까지를 그려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저녁은 어떠한가. 부엌이 없어져가는 저녁은 그저 스산하기만 하다. 그러니 질좋은 삶을 이야기하자면 ‘부엌이 있는 삶’이라야 온전할 것이다.

오랜 삶을 통해 형성되었을 그 오랜 시간성을 선사시대라 하고, 사는 삶으로 오늘이 기억되기를 바라며 생활 부엌이라 하였다. 프로그램을 함께한 마령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알밥]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여 그 기억이 “밥이 알이 되고, 알이 밥이 되는” 농(農)의 문화화를 통해 지역적 삶의 지속 가능성으로 그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옹기장이 1962년생으로 그렇게 피운 연기를 이제 저녁을 맞이한 우리 사회의 베이비부머세대(1955~1963생)동지(?)들과 공유하고 싶다. 근현대 우리 사회가 이룬 성과는 대단하다.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런데 이 성과의 주역 세대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해한다. 불안 사회와 피로 사회의 주역이기도 하면서 동시적이고 반복적이다. 그래 또 열심히 산다. 또 지나치게 열심히 산다. 자기 착취의 누적 피로 사회의 전형이 되었다. 그렇다, ‘저녁이 있는 삶‘, 이 말에 마음이 뭉클한 것은 이 세대가 주축이 되어 이룬 성과가 저녁을 잃어 얻은 피로 사회, 불안 사회라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다. 그 안다는 세대가 베이비부머세대다.

나락(벼)의 일생에 다시 사름이 있다. 추수로 몸이 베어져 나가고도 땅심으로 밑동에 싹을 올려 사름을 연출한다. 그와 함께 볏짚은 알곡을 내주고 섬(가마니)으로 다시 알곡들을 품어 안으니 거의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 일의 마무리, 그때, 그 일을 ’매조지를 했다‘고 해 왔으니 우리 인생이 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이제 도시 사회는 다음 세대에게 비워주고
돌아오라고.
집으로~,
고향으로~,
농촌사회로~.

2022 임인년 함께 밥 짓기를 소망하며
옹기장이 이현배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