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석] 연암동, 조선의 문장 ‘열하일기’의 산실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37)

12. 모색1. 새로운 조선이 꽃 핀 자리

1. 연암동, 조선의 문장 ‘열하일기’의 산실

 

이재석 (신문협동조합 ‘파주에서’ 대표)

 

열하일기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산중의 내 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노한 탓이요,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의심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박지원. 「열하일기, 일야구도하기」에서)”

 

 

연암동과 사미천

조선 사절단이 청나라 건륭제 칠순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북경에 왔다. 그런데 황제가 피서중이다. 사절단에게 장성 밖 7백리 열하로 오라는 전갈이 떨어진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사절단은 연경에서 열하로 무박 나흘의 장정에 오른다. 사절단을 따라왔던 연암 박지원은 이때 일을 일야구도하기 즉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넌 기’에 담는다. 조선 최고의 작품이라는 열하일기 중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명편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다.’ 연암은 내밀한 관찰, 리듬감 있고 세밀한 묘사, 그로써 도달한 명철한 깨달음을 하룻밤의 일로 풀어낸다. 하룻밤의 끔찍한 도하와 대비되는 산중의 일상이 제시되면서 글은 선명하게 주제를 드러낸다. 한데 열하에서 떠올린 그 산중은 어디일까?

“이곳에 이르기까지 나흘 밤낮을 눈을 붙이지 못하여 하인들이 가다가 발길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조는 것이었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이 구름장처럼 무겁고 하품이 조수 밀리듯 한다. 눈을 뻔히 뜨고 물건을 보나, 벌써 이상한 꿈에 잠기고, 혹은 남더러 말에서 떨어질라 일깨워 주면서도, 내 자신은 안장에서 기울어지고는 한다. 포근포근 잠이 엉기고 아롱아롱 꿈이 짙을 때는, 지극한 낙이 그 사이에 스며 있는 듯도 하였다.

-내, 장차 우리 연암 산중에 돌아가면, 일천하고도 하루를 더 자서 옛 희이 선생보다 하루를 이길 것이고 코 고는 소리가 우레 같아 천하의 영웅으로 하여금 젓가락을 놓치고, 미인으로 하여금 놀라게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돌과 같으리라- 하다가 한번 꾸벅하면서 깨니, 이 또한 꿈이었다.(박지원. 「열하일기, 막북행정록」에서)”

 

 

박지원 연암동 그림_문화재청

아홉 번 강을 건넌 다음 날. 열하를 향해 나흘 밤낮을 달려온 사절단은 꿈인 듯 생시인 듯 정신이 없다. 졸던 연암은 한바탕 큰소리를 치는데, 알고 보니 그 또한 꿈이다. 그가 돌아가 일천하고도 하루를 자겠다는 그곳은 연암 산중이다. 그렇다면 연암은 연암 산중으로 돌아와 정말 일천 하고도 하루를 잤을까? 그는 중국 여행 중 얻은 초고를 짊어지고 돌아와 그만큼의 날을 들여 ‘열하일기’를 썼다.

“엄계 꽃나무 아래에서 술을 조금 마시고 〈망양록〉과 〈혹정필담〉을 교열하여 차례를 정하다가, 이내 붓을 꽃이슬에 풀어서 이 의례를 만들어…(박지원. 「열하일기, 심세편」에서)”

교열하고 편집하고 차례를 정하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덧붙이는 작업을 그는 연암 산중에서 했다. 엄계는 열하의 강물과 비교하던 바로 그 산중의 시내다. 이 시내는 임진강의 지류인 사미천 상류 골짜기다. 시내는 북쪽에서 나와서 휴전선을 넘어 적성의 임진강으로 들어온다. 5천년 최고의 문장 ‘열하일기’가 여기서 탄생했다.

지금 엄계의 물은 어떤 소리를 내며 울고 있을까? 열하는 갈 수 있어도 연암 산중은 갈 수 없는 오늘, 연암처럼 누워서 그 소리 들을 수 없으니 궁금할 뿐이다. 꺽꺽 목 메인 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을까? 울음이 남아있기는 할까? (「파주에서」에서 전재 )

 

사미천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