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방송작가)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먼저 입장한 신랑과 하객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었다. 부부의 혼인서약이 끝나고,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축사가 시작됐다.
양가 아버님들이 과묵한 편이라 제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운을 띄운 건 신랑 측 어머니였다. 긴장한 듯 입술을 몇 번 깨물었지만 얼굴엔 연신 미소가 한가득. 처음부터 끝까지 신부의 칭찬을 늘어놓는다. 며느리, 라는 단어 대신 신부 혹은 이름을 불렀다.
아들 말똥이가 참 외롭게 자란 아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던 애가 미숙이를 만나더니 당장 결혼하겠답니다. 미숙이를 만나보았죠. 아들에게 딱인 친구였습니다. 어디서 저런 친구가 온 걸까. 너무나 잘 자란 아이였습니다.
사실 저 둘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주 평범하게 자란 친구들입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아주 성실하게 일하고요.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남선녀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참 기쁩니다. 제가 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지 않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거든요. 서로 끝없이 참고, 배려하고, 희생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할 자신이 있나요? (신랑, 신부가 대답했다)
우리한테 선물,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자주 와라, 얼굴 보여줘라,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도리만 다 해라. 자주 못 봐도 좋으니까 제 도리만 다 해라. 제 말 이해하죠? (신랑, 신부가 미소로 화답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신랑 신부 둘 다 술을 꽤 잘합니다. 오늘 즐겁게 보내다 가시고요. 저 둘은 아마 잘 살 거라 저도 더 이상 걱정이 없습니다.
축가가 끝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 신랑의 어머니는 신부를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 아들의 존재를 잊고 의자로 돌아왔다. 당황한 신랑이 “아니 엄마..” 하는 모습을 보며 하객들은 손뼉 치고 깔깔 박장대소를 했더랬다.
하나 둘 셋, 하고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사진 촬영을 이어가는 사진사가 없었다. 예식에 대포 카메라가 없다는 걸 눈치 챈 친구들은 어떻게든 오늘의 모습을 남기려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소규모 하우스였지만, 예상보다 하객이 많이 오는 바람에 테이블이 모자랐다. 직원들은 융통성을 발휘해 버진로드 옆에 능수능란한 솜씨로 테이블을 마련했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으로 변신한 공간에서 우린 배불리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주례가 없어 공백이 맴돌까 걱정했는데, 입담 좋은 사회자가 오디오를 채워주어 한층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참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신랑과 신부는 3년 연애하였다. 나는 신랑의 지인이다. 오래 만난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녀를 소개해달라 졸랐다. 첫 만남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입사와 퇴사, 결혼 준비 과정 동안 네 번 만난 게 전부인데 만난 첫날 연락처를 교환한 덕분이었을까 오래 알고 지낸 동생 같아 결혼식 내내 눈길이 갔던 건 친구가 아닌 신부였다.
어쩌면 저렇게 딱 어울리는 짝지를 만났을까. 궁합도 성품도 얼굴까지도 비슷한 둘이 만나니 없던 부분은 절로 채워지고, 있는 부분은 곱절의 풍족함이 되어 다시 모두에게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며.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저리도 아름다운 일이었지, 새삼 마음이 뜨거웠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