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XR 시대, 다시 묻는 화두 ‘나는 무엇인가’

XR 시대, 다시 묻는 화두 ‘나는 무엇인가’
[소태산 갤러리_대소유무]에서 묵은 화두를 다시 들다

 

이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

 

흑석역 1번 출구, 소태산기념관 지하 1층, 소태산 갤러리에서 XR 시대 화두, ‘나는 무엇인가’를 다시 묻다.

 

1.
5세대 이동 통신, 5G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한국이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고, 개통을 했으며, 단말기를 출시했다. 지난 9월 말까지도 전세계에서 5G를
서비스하는 나라는 한국과 영국 정도라고 한다. 5G 시대를 가장 먼저 열 수 있었던 한국의 기술이나 자본력
도 놀랍지만, 이미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인데도 5G 후발국이 이렇게 적다는 것도 한편 의아하다. 실제로 유럽
에서는 5G의 전자파 문제나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5G 도입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5G는
단지 기술이나 자본의 우위에 의해 결정되고 추진된다기보다는 미래를 사는 또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비스는 시작되었는데, 아직 제대로 된 5G 환경은 아니다. 통신사마다 경쟁적으로 본격적인 서비스 시기를
예견하고 있다는 것이 말해주듯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금년 말까지 국내 5G 가입자 5백만은 무난하게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단말기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홍보에 비해 만족스럽게 빠르
지 않은 속도와 충분치 않은 5G 전용 콘텐츠의 부재 등에 대한 불만도 끊이질 않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불
안한 미래에 뒤쳐지지 않고 싶다는, 보험을 드는 심경으로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4G에 비해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적정 콘텐츠도 별로 없고, 보조금 덕인지는 몰라도 턱없이 비싼 이 차세대 서비스에 가입자가 몰리는, 5G는 아이러니다.

5G 아이러니의 배경에 인공 지능, 특이점의 시대, 4차 산업 혁명 등의 표현들로 대변되는 거창한 미래 담론이
있다고 본다. 삼성은 이미 6G 연구 센터를 꾸렸고, 화웨이의 런정페이도 6G 서비스 선점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
내고 있다. 5G를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새 다음, 다음 단계의 이야기들에 더 익숙하다. 5G는 특히 한국
인들의 마음속에 이미 5-6-7G로 가는 긴 스토리라인의 프롤로그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지 모른다.

 

 

2.
5G로 인해 한층 더 다가온 인공 지능 시대의 판타지에 대해서도 지칠 만큼 많은 논의가 있다. 그러나 그 많은
넘치는 정보들 사이에 인공 지능 시대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콘텐츠는 꺼리
다. 볼 꺼리, 들을 꺼리, 놀 꺼리, 배울 꺼리, 즐길 꺼리…

5G 시대의 적정 콘텐츠는 어떤 양식이 될까. 적정 콘텐츠가 반드시 해당 플랫폼의 주류가 되는 것도 아니겠
고, 표현 자체에 이미 5G 환경, 5G 플랫폼에 적절한 콘텐츠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이 아이러니한 광풍이 진
정되고 서서히 그것이 실체를 드러내는 즈음이면, 이 서비스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던지게 될 질문이 될
것이다. 결국 5G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것은 속도나 기능보다는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고, 5G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콘텐츠 역시, 플랫폼의 변화만
큼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간략하게 앞으로 콘텐츠가 변화해 갈 과정을 긍정적으로 스케치해 보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지금 가상 콘텐
츠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가상화는 일상의 전 영역으로 확장되어 왔다. 디지
털 기술은 가상으로 수렴되고 있고, 비교적 성공적인 디바이스와 함께 구체화되고 있다.
‘인터넷에 빠진 당신, VR(가상현실)에 갇힌다.’는 경구처럼 가상 공간은 무서운 힘으로 현실을 침투하고 있다. 어
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가상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의 신비는 그렇
게 단순하지 않아서, 가상 콘텐츠 다음은 현실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다. VR은 AR(증강 현실)-MR(혼합 현실)로
확장되면서 XR(확장 현실)이라는 단계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 것이다.

 

 

XR 환경이 정착되면, 거기에서 웨어러블 플랫폼과 연계된 ‘나’콘텐츠의 시대를 거쳐 IoT-IoE의 ‘일상’콘텐츠의
시대로 확장해 갈 것이다. 단계별로 새로운 기술 환경, 미디어와 플랫폼은 최적의 콘텐츠를 요구하며 진화해 갈
것이다. 각각의 기술 단계에서 이를 선용하는 방법 역시 최적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이다. 일상 콘텐
츠는 더 이상 생활과 격리된 환경이라는 제한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상 전반을 콘텐츠와 함께 생활하고 도움
받고 실천하며 변화시켜가는 라이프테인먼트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3.
미래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지 부정적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선택의 문제지만, 그보다 우리가 더 관심 가져
야 할 것은 예측 가능한 미래의 아웃라인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좀 더 나은 세상
을 만들기 위한 소박한 논의들이라고 본다.

대략 25년 또는 30년 내에 인공 지능-인간 증강의 시대가 펼쳐진다고 가정하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
까. 이런 원초적인 물음으로 소태산 갤러리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는 다시, ‘나는 무엇인가’다.

‘나는 무엇인가-’
너무 익숙해서 새삼스러울 게 없을 듯한 묵은 화두지만, 대략 10년 후쯤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나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알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가지기보다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을 것이지만, XR이 정착된 웨어러블 환경에서 우리는 나에 대해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
이 구체적인 인식을 가지게 될 것 같다. 미래에는 인지가 발달되어서 견성쯤은 집에서 (가정교육으로?) 웬만
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소태산의 예견처럼, 굳이 원하지 않더라도 나와 우주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누
구에게나 가능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 모른다.

 

 

4.
소태산 갤러리에 시도된 ‘XR 거울 명상_나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는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분별을 포함해서 나에
대한 기존의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순수 물음이다. 화두에 접근하기 위해 정기신이라는 동양 전통의 인간 이해
를 기반으로 하고, XR의 첨단 플랫폼에 세 개의 거울 (정의 거울, 기의 거울, 신의 거울)을 배치해서, 나를 다
르게 보는 관점을 시연한다. 2018 CES에서 VR 분야 최고 혁신상을 받은 룩시드랩스의 룩시드링크의 기술이
결합되어 예술-과학-종교가 연계된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다. 11월 소태산 영화제에서 2차 파일럿을 선보이고
금년 말에 1차 완성을 계획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완성된 콘텐츠라기보다는 유저의 참여에 의해 확장되고 완
성되어 가는 열린 콘텐츠다.

9월 하순 개관한 [소태산 갤러리_대소유무] 라는 공간 역시 콘텐츠와 컨셉의 궤를 같이 한다. 도학과 과학이 병
진되고, 동과 정이 하나이며, 물질의 선용을 통해 정신개벽을 구현하고자 했던 소태산의 정신을 이 시대 첨단
과학 기술과 예술적 표현으로 되살리자는 취지다. 이 시대가, 첨단 기술이, 다시 ‘나는 무엇인지’를 묻고 나와
세계, 나와 일상의 관계를 다시 제대로 보라고 권한다. 이 혼란한 시대를 난감하게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나마 주어진 위안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