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교] 그들의 도서관이 부럽다

그들의 도서관이 부럽다

 

김희교 (건축가,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

 

 

“어떻게 오셨나요? 용건은?”, “저희 일행은 한국에서 온 건축가들입니다. 최근에 개관한 이 도서관이 훌륭하고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서 내부를 둘러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진도 찍고 싶습니다만, 가능할까요?”, “혹시, 우리 도서관(또는 기관)을 방문해서 사진촬영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협의한 적이 있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하게 둘러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촬영은 사전에 협의가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략 이런 대화가 오고갈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답변할 준비를 하고 도서관에 들어섰다. 국내외의 유명 건축물이 완공된 직후 내·외부 공간을 둘러보고 사진을 촬영하고자 할 때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예상한(?) 질문과 답변을 해야 할 담당 직원이 입구에 없다. 도서관의 로비와 실질적으로 도서관 내부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의 경계를 구분 짓는 차단기도 없다. 나로서는 우리 일행이 목적 없이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아닌 당신 나라의 훌륭한 시설을 예의 있게(?) 구경하러 온 방문객이라는 것을 말해 줄 상대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도서관은 물론 공공 기관 등의 건축물을 방문할 때 입구에서 차단 당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기 때문이리라. 헬싱키의 도서관 우디(Helsinki Central Library, Oodi)는 달랐다. 아니 건축 답사 기간 중 접한 북유럽의 모든 도서관은 달랐다. 그리고 그들의 도서관은 생활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아주 많이 부럽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나 저마다의 방문 이유를 가지고 도서관에 온 사람들이나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냥 “도서관에 왔네” 그 이상 이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다른 시선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위층과 아래층을 계속 오가고 있어도 특별한 일은 아닌 듯싶었다.

 

도서관 내에서 자유롭게 유아와 어울리는 부모들

 

젊은 엄마와 아빠들은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혹은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들을 옆에 두고 독서를 하고 있었고, 어떤 엄마들은 천으로, 자석으로 연결되는 커다란 판으로 아이들과 함께 피라미드처럼 생긴 인디언 텐트를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집을 만드느라 바빴다. 계단식으로 구성된 중앙에서 벗어난 비교적으로 덜 복잡한 공간에는 다리를 펴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펼치고 저마다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면 유리로 만들어진 많은 개별실에서는 세미나를 하거나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고, 모니터와 연결된 게임기에 몰입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들도 우리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듯싶었다. 이런 널따란 문화 엑스포 또는 놀이터 같은 도서관을 처음 보고 놀라거나 사진에 담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들은 처음 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도서관은 무슨 거창한 이유나 목적이 있어야만 가는 곳은 아니니까. 도서관인지 독서실인지 경계가 모호한 공간을 체험해 온 우리들만 어색할 따름이었다.

 

<우디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소개글(좌)과 우디 내 2층 모니터 화면(우) :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내용과 인종주의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013년 544개의 현상 설계안 중에서 당선되어 2018년 개관한 ALA 건축사 사무소의 헬싱키 중앙 도서관 Oodi는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보의 제공은 물론 즐기는 장소, 휴식의 장소, 만남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서관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정보와 장소를 제공한다는 신념이 공간의 곳곳에 숨어있었고, 2층의 모니터에서도 그 내용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핀란드 독립 101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Oodi의 개관 행사에 이틀 동안 55,000명의 헬싱키 시민이 참석했다고 하니 헬싱키의 도서관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거의 11명 당 1명의 헬싱키 시민이 참석한 셈이다.

 

우디 내 어린이 공간

 

도서관의 방 하나를 ‘어린이 열람실’이라고 명명하고 어린이들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의자와 책상, 그리고 어린이용 도서를 구비하는 것으로서 어린이 도서관에 대한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공간적으로 그리고 운영적인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 내부에 유모차를 놓고도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도록 널찍하게 동선 공간을 설계한 안목도 놀라웠지만, 유아와 함께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부모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다.  도서관에 들어서기 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서 주의 사항을 듣고 도서관에 들어섰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고 어린이들에게 신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헬싱키 대학 도서관의 서고와 열람실

 

일반 시민을 위한 도서관뿐만 아니라 대학교의 도서관도 넘어갈 수 있는 문턱(?)이 낮기는 마찬가지였다.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설계로 유명한 헬싱키 대학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도 매우 유사한 상황이었다. 로비에 있는 안내 데스크는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이 아니라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안내해 주기 위해서 상주하는 직원의 공간이었다. 정보를 제공하고 효율적인 접근을 도와주는 그야말로 도서관과 관련한 최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라는 것을 확실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

 

헬싱키 대학 도서관 로비

 

각층의 바닥이 타원형으로 오픈된 공간이 중첩됨으로써, 로비공간에서 천장을 바라보았을 때의 모습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한 헬싱키 대학 도서관은 각층의 바닥면이 단순히 오픈된 것이 아니라 그 오픈된 타원형의 선형을 따라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아름다움과 기능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의 이곳저곳을 사진 찍으면서 위 아래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채광이 가득한 공간에 앉아 보기도 하면서 핀란드가 낳은 대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알바알토의 명성에 걸맞게 디자인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각층의 여유 있는 공간 구성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전체 재학생수에 비해서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음이 비어 있는 좌석을 보면서, 시험 기간에 지정 좌석표를 부여받기 위해서 새벽별 보기를 하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던 학생들은 속칭 ‘메뚜기’신세가 되어 좌석의 주인이 자리를 비워두고 오랜 시간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가, 나타나면 다른 좌석으로 옮기고 또 옮기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세이네요키 시립 도서관의 어린이 공간

 

헬싱키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세이네요키라는 지역에 위치한 알바알토 도서관을 마주하고 새로 건립된 세이네요키 시립 도서관(Seinäjoki Public Library)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알토 도서관의 건축 요소를 재해석하여 설계했다고 일컬어지면서 지하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기존의 알토 도서관과 연결되는 신관은 기존의 알토 도서관의 지붕을 덮고 있는 구리 소재를 신관 건물의 전체 외관에 사용하고,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그대로 옮겨왔다.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의 채광 조건을 고려하여 한쪽 벽면을 모두 창으로 내었고, 사람들은 그 창 주변에 광합성을 하듯이 한가롭게 앉아서 자유롭게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오픈된 공간에서 한층 정도 내려간 아이들의 공간에는 그야말로 놀이터인지 도서관인지 모를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건축물 답사 중 도서관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던 우리 일행은 스웨덴에서는 다른 건축물에 우선하여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Stockholms Stadsbibliotek, 1920~1928)을 찾았다. 물론 유명한 건축가 군나 아스플룬드(Gunnar Asplund)의 작품이기에 당초에도 답사할 건축물 목록에 있었지만, 핀란드의 Oodi가 2018년에 건립되어 사용자의 요구를 잘 반영한 사례라면, 90년 전에 건립된 도서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핀란드에서의 경험의 덕분으로 도서관으로의 통제받지 않는 진입에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진입로에 스톡홀름 도서관이라는 팻말 아래에 Gunnar Asplund라고 건축가의 이름이 같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도서관에는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부럽기 시작한 것은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서였을까? 도서관을 들어서니 젊은이들은 물론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노인들까지 끊이지 않고 출입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노인들도 카운터에 도착해서 백팩에서 책을 꺼내서 반납하고 안내 데스크에서 질문하고 또 책을 대출해서 백팩에 넣고……,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핀란드에서 자유롭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즐기는 남녀노소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면, 스톡홀름 도서관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문화 시설이기도 하지만 복지 시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외국을 방문하면서 “우리도 이런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제는 대한민국에도 전부 들어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외국의 대학생들이 까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웹서핑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보곤 참 괜찮은 모습이다 싶었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던 공간들이 주변에서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름이 주는 마법인지 모르지만 공간이 바뀌고 명칭이 바뀌니 공간이 하는 역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동사무소가 주민 센터로 바뀌고, 파출소가 지구대로 바뀌고, 지자체의 시청이 문화 복지 행정 타운으로 바뀌면서 문화 공간을 행정 시설과 함께 수용하여 방문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도서관 건축물도 해외의 많은 우수한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이전에는 도입하지 않았던 공간적 개념으로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국내에 지어진 가장 최근의 도서관의 모습을 보았다면, 핀란드와 스웨덴의 도서관에서 그 정도로 계속해서 감탄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도서관과 도서관을 이용하는 문화는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린아이들이 도서관을 놀이터로 생각하고 해맑게 웃으면서 떠들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모습, 젊은 엄마 아빠가 유모차를 몰고 도서관에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동화책을 읽는 모습,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백팩을 메고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을 대여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도서관, 도서관 문화가 부럽다. 아주 많이…… 주말에는 새로 생긴 도서관을 찾아서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