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선] 남북한 청년 스키 캠프를 가다

남북한 청년 스키 캠프를 가다

 

한가선 (한민족한삶운동본부)

 

 

지지난 주, 북한 이탈 주민 청년들과 남한 출신 청년들이 함께 친목을 다지고 겨울을 즐기는 1박 2일 캠프 <쿨 스키 & 핫 토크>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이 캠프는 원불교에서 공식적으로 남북 교류 및 대북 지원 사업 등을 담당하는 ‘한민족한삶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캠프였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한민족한삶운동본부는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보조금 예산을 지원받아, 남북 청년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북한 이탈 주민들을 문화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진행한다.

 

 

5년 전, 한민족한삶운동본부에서 ‘북한 이탈 주민 지원 사업’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보조금 지원을 처음 받기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원불교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몇몇 탈북민들을 직접 만나 어떠한 지원 사업을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는데, 기존의 많은 프로그램들이 ‘김치 담그기 행사’ 또는 ‘통일 콘서트’ 등 물질적인 지원만을 하고 끝나거나, 일회적인 행사에 그쳐서 아쉽다는 피드백을 여럿에게서 받았다. 한 번 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으로 남는 지원 사업이면 좋겠다는 탈북민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남북 출신 주민들이 문화적인 교류를 하고 서로 친해지는 관계를 쌓는 사회적 공간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하여, 남북 청년들이 함께 여행을 하며 문화 교류 기행을 하는 프로그램, 북 출신 강사들이 직접 북한의 생활문화를 남한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 남북 출신 가족들이 함께 가는 DMZ 가족 캠프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진행해 왔다. 또한, 문화 교류를 테마로 하며 한민족한삶운동본부 프로그램과 결이 비슷한 단체들과 콜라보 행사를 하기도 하며, ‘남북 청년x문화 교류’ 분야의 촉진제 역할을 해왔다. 이번 겨울 캠프 또한 한민족한삶운동본부와 남북 청년 문화 교류 단체 <오!각별>, 남북 청년 독서 모임 <남book북한걸음>이 함께 기획하고 운영한 행사였다. 2019년의 끝자락을 잡는 마지막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던 스키와 토론의 조합이라니.

 

 

원래는 DMZ 캠프로 예정되어 있던 프로그램을 막판에 <스키x토론>캠프로 기획을 바꾼 것은 DMZ 근방 돼지 열병 때문에 노선을 변경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book북한걸음> 독서모임 대표인 친구가 “북 출신 친구들은 남한 사람들에 비해 문화 체험의 기회가 적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체험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여름과 겨울 스포츠 등이 그러할 것이다. 나 또한 지난 5년간 북 출신 친구들을 많이 접해 왔기 때문에 문화 체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전 조사를 위한 캠프 신청서로부터 절반 가량의 신청자들이 스키장 경험이 없거나, 1회의 경험만 있다는 응답 결과를 보니 생각보다도 스키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놀라웠다.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주변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스키&보드 경험이 꽤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청자의 절반이 남한 출신인 것을 감안한다면, 북 출신 친구들은 대부분 스키의 경험이 많지 않은 듯 해 보였다. 비록 34명의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는 하지만, 직접 통계를 눈으로 보니, 앞으로도 더욱 이런 종류의 문화 체험의 기회를 북 출신 친구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캠프는 스키 체험만 하고 1박 2일을 단순히 즐기는 캠프가 아니었다. 겨울 스포츠를 함께 즐기며 단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뜨겁게 이슈가 되었던 남북한, 또는 탈북민 관련 이슈들에 대해서 남북 청년들이 종합적인 대토론회를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특히, 2019년에 북한 이탈 주민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이슈인 ‘탈북 모자 아사 사건’, ‘북한 선원 송환 사건’ 등 구체적인 주제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포함했고, 늘 이슈가 되는 ‘북핵 문제’와 ‘통일 방법론’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 또한 특정한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주변 친구들과 소소하게 생각을 나눈 적은 있었지만, 여러 명의 남북 청년들과 본격적으로 토론을 해본 적은 없었기에, 다양한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는 이 자리가 꽤나 기대되었다.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오전 8시 반. 찬바람이 패딩 속을 파고드는 이른 아침부터 캠프에 참여하기 위한 남북 출신 청년들이 손을 호호 불며 서울역에 모였다.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들은 신청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번 캠프는 딱 공동 주관을 하는 <오!각별>과 <남book북한걸음> 회원들 중심으로만 홍보를 하고 모집을 했는데,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서 온 뉴페이스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참가자들이 모두 단체 버스에 탑승한 후,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출발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베어스타운! 가는 길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렌탈 숍에서 장비를 모두 대여하고 나니 금방 12시가 되었다.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초코바 하나씩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지칠 때까지 신나게 스키‧보드를 탈 참이었다. 특히 북 출신 친구들 중에는 스키 경험이 거의 없거나 처음 타 본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해 노르웨이에서 온 알렉스라는 친구가 자원을 해서 기초적인 강습을 해 주기로 했다. 잘 가르쳐 주기 위해 전날 유튜브로 스키 강습 영상을 계속 돌려 봤다나.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그렇게 실력이 비슷하거나 친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스키와 보드를 실컷 즐긴 후, 각자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7시에 세미나실에 모였다. <쿨 스키 & 핫 토크>에서 쿨 스키를 마쳤으니 이제 핫한 토크를 질러 볼 시간이었다. 서로 아는 얼굴들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보거나 처음 본 사이도 있었으므로, 간단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레크레이션을 진행했다. 서로에 대한 깊고 얕은 질문들을 주고받기도 하고, 곳곳에서는 낄낄대는 소리도 들리며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본격적인 핫 토크 시작. 토론의 주제는 네 가지로 각기 다른 테이블에 각 주제를 올려놓고 그룹별로 토론을 진행했다. 30여 명이 모두 한꺼번에 토론을 진행하기란 어렵기도 하거니와, 특정 사안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자함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토론 주제는 1) 북한 선원 송환 사건, 2) 탈북 모자 아사 사건, 3) 북핵 문제, 4) 통일 방법론으로 진행했다. 각 테이블에는 토론을 이끔과 동시에 기록을 담당하는 주제별 퍼실리테이터들을 미리 섭외해 뒀는데, 남북 청년 교류 활동을 활발히 하는 참가자들이라도 특정 주제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할 수 있음을 염두하여, 퍼실리테이터들이 미리 주제에 대한 간단한 배경 지식을 한 페이지짜리로 정리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테이블에 올려 두기도 했다. 자료나 역할 등을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 둔 운영진들의 노력과 더불어 참가자들의 열정이 더해지니, 어려울 것 같았던 토론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매끄럽게 흘러갔다.

운영진의 일원으로서 함께 캠프를 준비했던 내가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참가자들의 ‘통일관’이었다. 토론을 위한 조를 구성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신청서를 작성할 때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함께 진행했는데, 이 설문 조사의 결과가 눈여겨볼 만했다. 55.9%, 즉 과반 이상의 참가자들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응답했지만, 정부가 북한에서 온 선원을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추방한 사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고(55.9%), 긍정적인 응답은 26.5%에 그쳤다. 게다가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 44.1%, 지양하는 사람이 44.1%로 엇비슷하게 의견이 갈렸는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82.4%가 동의한다고 응답한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뒤섞이고 변화하고 새로운 창조로 연결되는 사회적 공간은 항상 흥미로운 법이다. 남북 청년들의 핫 토크 현장이 딱 그러했다. 주제별 토론 1부 50분 & 2부 50분, 그리고 종합 토론 30분으로, 꽤나 긴 토론의 시간이 부담스럽거나 피곤하지는 않을까 운영진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활기차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북한 선원 송환 사건은 탈북민 커뮤니티를 반으로 갈라놓을 만큼 쟁점적인 이슈였고, 탈북 모자 아사 사건 또한 탈북민들에게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니만큼 할 말이 다들 많은 듯했다.

1부와 2부 토론을 거쳐 각 이슈별 테이블에서 ‘토론왕’을 투표로 선발한 뒤, 그 토론왕들이 앞으로 나와 각 이슈들과 토론 내용에 대한 브리핑도 하고, 다른 테이블 사람들에게 질문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각 테이블에서 주제별 토론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합 토론을 통해 전체적인 의견에 매듭을 짓는 시간을 가지니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남는 듯했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투표로 뽑힌 이 날의 토론 킹왕짱은 바로바로 노르웨이에서 온 알렉스!! 한국말이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차근차근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노력과, 남이나 북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도 아닌데 한반도 이슈와 국제 관계에 대해 평소에 깊게 고민했던 흔적이 보여 많은 사람들이 감흥했던 것 같다. 물론, 토론왕에게는 저녁 간식이 풍성하게 주어졌다.

스키도 타고 토론도 3시간이나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지치지도 않는지 밤새 뒤풀이를 하고, 북 출신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북한 카드게임 44A도 함께 치면서 또 한 번 젊음을 불살랐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역시 남북 청년들이 한데모여 놀며 친해지는 공간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듯하다. 이번 캠프를 통해 나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평화 학자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이 항상 강조하듯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상호 교류를 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간과 토대 위에 평화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법이다. 이러한 교류의 장이 한국 사회 곳곳에 더욱 풍성하게 생겨나 북한 이탈 주민들과 남한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서로를 통해 배움으로써, 이러한 경험의 축적이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갈라진 한반도의 사회적 봉합을 촉진해 주는 통일의 다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