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근] 아들 딸 혼례 덕담

아들 딸 혼례 덕담

 

최 훈근 (전 KBS TV PD)

 

 

지난해 봄 아들을 장가보낸 지 1년 반 만에 딸을 시집보냈다. 엄마로서는 딸인 만큼 아들 때보다 소소하게 챙겨야 할 일들이 훨씬 많았지만, 아빠인 나는 한번 대사를 치러본 경험도 있고 해서 결혼 준비에 신경쓸 일이 별로 없었다. 살림 장만하는 일도, 드레스와 한복 준비하는 일도 운전기사 역할이나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예복도 아들 혼사 때 입었던 양복에 넥타이만 하나 새로 장만하는 걸로 끝이었다. 결혼식 진행 역시 아이들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짰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주례 없이 진행하는 결혼식에서 아이들에게 해줄 덕담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지난 결혼식 때 아들이 불쑥 덕담을 해주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엉겁결에 덕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덕담이 괜찮았는지 덕담을 읽고 나서 단상을 내려가려는 나를 아들이 덥석 끌어안아 나도, 하객들도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식후에 피로연장에서도 내 친구들이 덕담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파일을 보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급기야는 지금 내 글을 실은 <세상으로 낸 창>에 덕담을 싣기까지 했다. “덕담 전문으로 나서지”라며 우스갯소리를 한 친구도 있었다.

아들 결혼식 덕담은 2~3일 만에 비교적 쉽게 썼다. 첫 번째 결혼이고 할 말도 담담해서 그랬는지 덕담으로 해줄 내용도 금방 맥이 잡히고 손을 대니 술술 써졌다. 그런데 두 번째 덕담을 쓰려고 하니 왠지 처음보다 고전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애잔한 딸이라서, 첫 번째 덕담과는 좀 달라야 해서, 사돈어른이 내 덕담에 앞서 먼저 말씀을 하셔서 등등 몇 가지 이유가 있기는 했다.

아니나다를까 마음에 들지 않는 초고를 몇 번이나 고쳐 썼다. 웬만큼 정리가 된 것 같아 마누라에게 보여주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아 속으로 ‘어이쿠 이거 큰일났다’ 싶었다. 마누라의 의견을 곁들여 다시 정리한 원고를, 마누라가 딸에게 보여주었는데 딸아이 반응도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쯤 되자 내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라는 아빠는 도대체 무슨 아빠인가?”

며칠 휴지기를 둔 후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상황의 묘사가 아니라 아빠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집중해서 찬찬히 써보았다. 덕담을 마무리하는 시가 마땅치 않았는데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가까스로 마음에 맞는 시를 하나 찾아냈다. 그렇게 해서 마무리된 덕담은 마누라, 딸아이, 사위 모두의 마음에 웬만큼 들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결혼식은 훈훈하게 끝이 났고 덕담도 좋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딸아이의 결혼식을 끝으로 이제 모든 경조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죽기 전에 무슨 글을 쓸 때 다시 이만큼 애를 먹게 될지 궁금해진다. 아래 글이 딸아이 결혼식 때 들려준 덕담이다.

 

 

오늘 경민이와 윤영이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집안 어른과 선후배님, 친구들, 그리고 멀리 부산과 진주에서 새벽 걸음을 해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부 윤영이와 엄마 사이는 좀 유별난 애정 관계라서 덕담은 집사람이 하는 게 맞겠다 싶었는데, 집사람은 울 게 확실해서… 그나마 덜 울 것 같은 제가 대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이 많고 심성이 맑은 우리 윤영이는 잘 웃고, 또 주변 사람을 무장 해제시켜 맘껏 편히 웃게 만드는 귀한 재주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윤영이 덕분에 30년간 저희 집은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 윤영이가 이제 시집을 가네요.

아까 신랑 아버님 덕담을 들으면서 느끼셨을 테지만 바깥사돈은 참 강직하신 분입니다. 그런 엄격한 분께서 경민이에게 “네가 부산을 떠나 대구에서 일을 하게 된 게 윤영이를 만날라고 그랬나 보다” 하고 말씀하셨답니다.

인자하신 안사돈께서는 “에미 눈에는 흠잡을 게 없던 경민이, 우리 귀한 윤영이”라고 하셨다네요. 우리 딸아이를 그리도 귀히 생각해 주신다니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으로부터 올곧음과 속 깊음을 함께 물려받은 경민이는 볼수록 진국이었습니다. 그런 경민이를 맞게 된 건 윤영이와 저희에게는 큰 복입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집사람이 몇 번씩 반복해서 하던 말이 있습니다.

“너는 경민이네 집안에 즐거움과 환함을 몰고 오는 이쁜 아이가 될 거야”

우리 윤영이를 데려가는 경민이는 참말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경민아, 윤영아,

너희 둘은 복이 많은 것 같아 여러 가지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리라 믿지만 애비된 걱정에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젊어서도 나이들어서도 이 길이다 싶으면 뒷걸음치지 말고 쑥쑥 앞으로 전진해라.

혹시 어려움에 처해도 크게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 뒤에는 운명적인 든든한 빽, 엄마 아빠, 또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잖니.

​두 사람 모두 피디를 천직으로 택해 내 감회가 새롭다. 나는 피디란 사람들 마음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마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늘 헤아리며 살길 바란다.

끝으로 복효근 시인의 <안개꽃>이라는 시 한 편으로 신랑 신부에 대한 당부와 축복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이제 부부가 된 경민아, 윤영아,

경민이는 안개꽃이 되어 윤영이를 장미처럼 빛나게 하고, 윤영이는 안개가 되어 경민이를 숲의 호랑이처럼 우뚝 서게 감싸면서 잘 살기 바란다.

두 사람을 사랑의 눈길로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저희 가족 모두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덕담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안개꽃>에 관한 언급이 가장 많았고 그 시를 직접 화선지에 붓으로 써서 보내주신 선배도 계셨다. ‘숲의 호랑이’, ‘마음의 자리’, ‘운명적인 든든한 빽’, ‘뒷걸음치지 말고 전진해라’ 등의 구절을 집어서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심전심인가보다.

 

 

아래는 지난해 아들 결혼식 때 했던 덕담이다. “깊은 맛”의 아들과 “감칠 맛”의 딸을 결혼시키는 아비의 마음이 다르기는 다른 것 같다.

 

오늘 윤석이와 은주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집안 어른과 선후배 동료 여러분, 친구들, 그리고 지방에서 먼길을 마다않고 와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여러모로 참 감회가 깊은 날입니다. 정말 우연히도 33년 전 오늘, 4월 7일에 저희 부부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저희와 은주 부부는 같은 날 결혼기념일을 맞게 됩니다. 아마 평생 결혼기념일 까먹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은주 할머니께서 택일해 주신 날짜가 4월 7일이란 걸 알았을 때 “하, 이건 천생연분” 하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는 33년 전 저희 부부 결혼 주례를 서주셨던 은사님께서 와 계십니다. 연초에 세배를 드리러 갔는데 윤석이가 어렸을 때의 일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정말 깜작 놀랐고 또 고마웠습니다. 이렇듯 신랑 신부와 여러 인연으로 맺어진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계시니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세상의 자식들치고 귀엽지 않은 자식이 없겠지요. 또 부모 속 썩이지 않은 자식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식이 어느새 훌쩍 자라 제짝을 찾게 되니 지난 일들이 모두 애잔한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윤석이는 세상 틀에 가둬지지 않는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아이였습니다. 저희가 본 은주는 꾸밈없이 맑고 밝은 아이였구요. 지난 몇 년간 윤석이가 은주를 만나고 사귀면서 참 많이 변해왔던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할까요, 윤석이를 그렇게 바꿔준 은주가 너무 고맙고 이뻤습니다. 이런 보물 같은 따님을 윤석이에게 보내주신 사돈어른, 정말 고맙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세상살이가 참 힘들다고 합니다. 윤석이와 은주도 살아가다 보면 자기 앞가림하기도 버거울 때가 많을 겁니다. 잠 못 이루는 밤도 있겠지요. 저는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이 옆 사람 사정 생각해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윤석이와 은주도 가능하다면, 지금의 여유로운 마음을 잘 가꾸고 다듬어서 주변 사람들까지도 살필 수 있는 따뜻하고 넉넉한 부부가 되어 주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새 출발을 축복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분들께 두고두고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귀한 사람으로부터 좋은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책 제목이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입니다. 그 가운데 마음에 와닿았던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두 사람을 위한 축복의 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두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하나님,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먼 훗날 윤석이와 은주가 이런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새 식구들과 함께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소중히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