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부활 신앙으로 코로나19 바로보기

부활 신앙으로 코로나19 바로보기

 

최영민 (천주교 예수회 한국관구 신부)

 

 

봄, 봄,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찬란한 계절,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사회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하소연도 하고 실제적으로 서로 도우며 삶을 이어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해야 하니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은 많은 신앙인들은 교회(성당, 절)에도 못 가고 집콕(방콕) 신세이다 보니 더욱 더 답답한 상황이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며 집회를 갖는 사이비교나 일부 개신교들도 있긴 하다). 이제 “부활절”과 “부처님 오신 날”도 지나며 사태가 진정되는 분위기여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다. 부활 시기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여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기이며 가톨릭교회 전례 시기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부활 신앙”은 가톨릭교회의 신앙의 정점이기에 그렇다.

 

 

부활 신앙의 의미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활에 대한 믿음은 단순히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부활했듯이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부활을 과학주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신앙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어느 종교이든 나름 제대로 된 교리와 신학 체계를 갖춘 종교라면 사실 이 ‘부활의 개념”이 다 있다고 본다. (힌두교나 불교의 ‘윤회’사상도 사후에 다른 모습이지만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니 부활의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종교에서 부활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다들 부활 개념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종교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의 핵심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인간존재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불완전성의 극명한 증거는 죽음이다. 있을 존(存), 있을 재(在), 존재(存在)는 “있음”인데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은 존재의 궁극적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로 인해 인간 존재는 살아 있으면서도 항상 무언가 ‘두려워하게’된다. 일상 안에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걱정들, 두려움들은 모두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삶이 무에 기쁘고 행복할 것인가?

하여, 우리 마음에 그 ‘두려움’을 없애고 “평정한 마음”을 얻은 다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고자 함이 바로 종교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한 삶의 첫 단계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고 두려움의 궁극적 대상인 ‘죽음’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부활’은 ‘죽어도 괜찮다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니 이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다면, 지금 여기 당장 우리의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어떻게? ‘겁신경’을 끈 완전 ‘막가파’로 바뀐다. 시중의 표현으로 “겁 없는 사람”,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 된다. 겁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일단 마음이 평정할 것이고,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할 말을 당당하게 하고,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가장 기본적 바탕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할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

둘째, 부활의 두 번째 의미는 부활한 예수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의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의 무덤으로 찾아간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부활하여 예수가 없는 빈 무덤을 봤고, 예수가 그 앞에 나타났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았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다음, 실망하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따랐던 제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한 예수가 그들과 가까이 함께 걷고 있는데도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왜,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바로 “변화”이다. 부활 전 예수와 부활 후의 예수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변했다는 것이다. “부활의 변화”는 그냥 쌍꺼풀 수술 전과 후, 살이 빠지기 전과 후, 가발을 쓰기 전과 후 정도의 변화가 아니라 ‘근원적 변화’이다. 육체적 변화뿐만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온전한 변화다.

부활의 핵심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변화”인 것이다.

“부활 신앙”으로 우리는 근원적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인들 중에도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대단히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종교 안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부활 신앙의 핵심 두 가지를 정리하면:

부활할 것이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고 당당하게 살면서 마음에 평화를 얻는다. 부활은 “변화”하는 것이니 보수적이고 수구적 태도를 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이런 태도로 그 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온 물질주의적이고 자본 중심적인 우리 삶에 경종을 울린 “코로나19”사태를 바라보면서 깊은 성찰을 해야 만이 앞으로 우리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