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내 몸과 우리 지구를 살리는 공개된 비법

내 몸과 우리 지구를 살리는 공개된 비법

 

최영민, sj (천주교 수도자, 사제.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나는 1년여 전, “앞으로 채식만 먹을 것이다”라고 우리 공동체에서 선언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로서 공동체 안에서 독자적으로 “색다른 행태”를 벌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미안한 일이지만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은 내가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당연히 가야 할 길이었다.

그리고 ‘채식 선언’ 후 3주가 흐른 시점에서 우연히 내 몸무게를 재보니 약 6kg이 빠졌고 한 달 후에 다시 재보니 9kg이 줄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여기서 “우연히”라는 부사를 굳이 쓴 이유는 내가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차원에서 채식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채식 선언 후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서 당뇨 환자로서 석 달에 한번 받는 정기 검진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나의 검진 결과를 보더니 깜작 놀라며 내게 물었다. “신부님, 뭘 하셨기에 이렇게 수치(당화혈색소)가 낮아졌습니까?” 나는 답했다. “글쎄요. 제가 한 일은 그저 채식을 했을 뿐인데요. 좋아졌다니 기분 좋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따라오시죠.” 의사는 자신이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당뇨약을 처방하면서 3개월마다 받는 정기 검진을 6개월마다 받으라 했다. 그 후 6개월 후에 받은 검사 결과도 좋았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처방받은 당뇨약을 거의 먹지 않고 자연스레 게으름을 피우며 복용하지 않고 있다. 나는 당뇨병이 거의 완치된 것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실천했더니 내 몸이 건강해진 것이다.

여기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길”이란 나의 먹거리를 바꾸는 것이다. 육식에서 채식으로 식생활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육식을 한다는 것은 축산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고, 축산업의 지속을 위해 사료의 원료가 되는 콩, 옥수수 등을 경작해야 하고 그 만큼 땅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그것을 위해 이미 90년대부터 매 1분마다 축구장 면적만큼 숲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온실 가스를 더욱 많이 배출한다는 것이니 내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제 개인의 선택 영역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며칠 후 이어서 쓰려고 다시 읽어보니 글이 좀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여, 쓰고 싶고 알리고 싶은 “핵심 내용”만 간단하게 써보려 한다.

결론을 먼저 알려드리면: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고자 한다면, 그리고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에서 지구를 살리고자 한다면 아래 다섯 가지는 멀리하고 세 가지만 먹으면 된다.

1.고기 2.생선 3.계란 4.우유 5.유제품(치즈, 요거트 등)은 먹지 말고,

1.과일 2.채소 3.통곡물(여기서 통곡물이란 가능한 낟알이 눈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밀”이 아닌 이상, 우리가 먹는 모든 밀가루 제품들은 100% 수입 제품이고 수입 과정은 항생제와 방부제가 필수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 문장으로 다시 쓰면:

동물성 단백질은 끊어버리고 채식을 하면 몸과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 기구는 이미 가공 육류(소시지 등)를 제1급 발암 물질, 그냥 고기는 제2급 발암 물질로 분류를 해 놓았다. 알려진 사실이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 점에 대해 netflix의 다큐멘터리 영화 “cowspiracy: the sustainability secret”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축산협회가 “green peace”, “sierra club”같은 환경 단체에 후원금을 많이 기부하니 그런 유명한 환경 단체들도 육식을 멀리하라는 캠페인을 더디게 한다는 것이다. 동물성 단백질은 인체에 들어가면 일단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축산 협회, 낙농 협회 등 고기와 우유를 유통하는 초국적 회사(cargill, monsanto 등)들은 이러한 사실을 숨기는데 예산을 많이 지출하여 인류가 이런 사실들을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고기를 멀리하라고 하니 대용품으로 생선(물고기)을 먹는데 이것은 동물성 단백질이란 면에서 같은 것이고, 물고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제는 먹으면 안 되는 식품이 되었다. 첫째, 바다가 이미 쓰레기로 오염이 되어 있어 물고기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있고 이를 섭취하는 인간은 미세 플라스틱도 함께 먹는 것이다. 둘째, 상업어업이 문제다(netflix 영화, “seaspiracy” 참고 하시라). 옛날에는 바닷가의 어촌에서 어부들이 통통배를 타고 근해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다. 이는 그렇게 큰 산업이 아니었지만, 큰 배로 먼 바다까지 나가 물고기를 잡는 ‘원양 어업’이 발전하며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다다익선’으로 무한정 물고기를 남획하니 어종과 그 개체 수가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런 물고기를 먹고사는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의 개체 수도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고래의 배설물을 먹고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는 “공동의 집” 인 지구의 70% 차지하는 바다에서 온실가스를 머금고 우리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식물성 플랑크톤”인데 “상업 어업”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생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물고기에는 오메가-3라는 좋은 지방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좋다는 오메가-3도 사실은 생선 기름(지방)일 뿐이다. 이 지방을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뽑아내 팔아먹는 자본주의는 참 대단하다. 결론적으로 생선 지방을 먹지 않아도 된다. 과일, 채소, 통곡물만 먹어도 거기에 있는 필수 지방과 단백질, 미네랄 등 인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고 남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몸과 지구를 위해서 물고기도 먹거리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고기를 먹지 말라 하니 어떤 이들은 “고기를 먹어줘야 기운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과학적으로 이미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netflix 다큐 영화, “the game changers”에서 이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세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음식, 육식과 채식을 먹게 한 후 몇 시간 후에 피 검사를 하여 피의 혼탁을 측정하는 등 간단하고 재미있는 실험과 각 종 운동 선수들의 인터뷰로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님이 증명된다. 555kg을 들고 열 걸음을 걷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람은 채식주의자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딴 사람도 채식을 한다. 철인 3종 경기보다 더 심한 운동인 ‘울트라 마라톤’에서 7년 연속 우승을 한 사람도 채식을 할 때 더 나은 기록을 올릴 수 있다고 증언한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할 때 실제로 더욱 활력 있고 몸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19세기의 구닥다리 이야기와 편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지금은 21세기이다.

맛있는 고기와 생선을 먹지 말아야 한다니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제 사실을 알았으니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실? 우리가 맛있게 먹고 좋아했던 고기와 생선(동물성 단백질 공급 식품, 계란, 우유, 유제품 포함)이 우리 몸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과 인류가 이 지구의 기생충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계를 자본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기후 위기”를 되돌릴 수 없는 tipping point가 다가올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되돌릴 수 없는 기후 위기가 오면 남는 것은 오직 인류의 멸망뿐이다. 그러기 전에 인류는 한 공동체로서 이제 맛있게 먹어오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 아니, 과일, 채소, 통곡물로 더욱 맛있는 레서피(recipe)를 찾아 나서서 채식이 일상식이 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여 2030년 즈음에는 사람들이 육식을 고집하는 친구를 위해 “야, 근처에 고기 들어간 음식 메뉴 있는 집 어디 없냐?” 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꿈을 그려 본다. 2050년 즈음 세계 청소년 역사 교과서에:

“30년 전만 해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육식을 즐기는 원시적 인류가 있었고 그로인해서 지구가 기후 위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현명한 인류는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는 운동을 벌여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였다”라는 문장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