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눈치 보며 혼밥하는 시대는 갔다

눈치 보며 혼밥하는 시대는 갔다

 

유승민 (방송 작가)

 

 

대학에 갓 입학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오리엔테이션으로 정식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던 때라 교정은 어수선했다. 저마다 안면을 트거나 인사하며 친해지기 바빴고 나를 비롯한 유학생들은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 채 라운지를 서성거렸다. 아직도 기억난다. 4월의 봄날. 라운지 건물은 통유리로 햇살이 고스란히 내리쬐는 구조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오롯이 담아 따스한 온기를 뿜어냈다. 모두가 재잘재잘 행복해 보이는 분위기 속 우두커니 서있던 나.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디로 가면 먹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학교 뒷문을 걸어 나와 오는 길에 봤던 작은 주먹밥집에 들어가 얇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주먹밥 두어 개를 집어 들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녹차 하나 사서 다시 라운지로 돌아왔는데 앉을 데가 없다. 테이블엔 이미 저마다 삼삼오오 짝지어 앉아 있었고 개중엔 이미 꽤나 친해진 듯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대로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담담하게 플라스틱 용기를 열어 주먹밥을 입에 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고른 게 화장실이었다. 우리 학부는 새로 지은 건물을 썼기에 화장실엔 음악이 흘렀고 온통 새하얗고 좋은 향기가 났다. 그래도 화장실은 화장실이다. 열린 칸 아무 데나 들어가 변기 뚜껑을 닫고 위에 앉아 비닐봉지를 풀었다. 주먹밥 한 개 먹고 녹차 한 모금.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눈물을 머금었다거나 목이 콱 막힌다거나 하는 감성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도 먹게 되는구나 하면서 입 안에 오물오물 오랫동안 씹고 천천히 삼키고를 반복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건. 그 이후엔 다행히 친구가 생기기도 했지만 아마도 다신 화장실에서 먹지 않으리라 무의식 속 DNA들이 다짐이라도 한 듯 점심시간만 되면 뻔뻔한 생존력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그게 2004년,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10년 전쯤 일본에선 벤조메시(便所飯)라는 말이 유행했다. 화장실 밥.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걸 뜻한다. 일본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다수를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 남의 눈에 띄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 일본의 지독한 집단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슬픈 현상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시켜놓고 혼잣말(내레이션)로 맛을 음미하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유행하는 요즘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체감상 한국의 1인 문화는 급변하고 있다. 홍대에 1인 노래방으로 자리잡은 <수>노래방.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혼행족(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도 수년 지났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짤에는 <혼자 어디까지 해봤니?>라는 질문과 함께 밥 먹기, 고기 먹기, 영화 보기, 여행 가기, 쇼핑하기, 노래방 가기 등 체크리스트가 나온다. 체크한 문항이 많을수록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자부해도 된다는 지표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아직까지 점심시간에 혼자 식당 문 두들기기란 쉽지 않다. 흔쾌히 반겨줘도 손님이 많으면 덩달아 눈치가 보인다. 일본에선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게 너무도 당연했고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고깃집도 점심시간에 십중팔구는 혼자 오는 손님이었다. 화로를 갖다 놓고 고기 한 점 올려놓고 입맛 좀 다시다가 살짝 구워지면 입에 호로록 넣고 밥 한 젓가락 뜨는. 그 풍경이 나에겐 너무나 익숙했다.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 일본 친구들이 가장 놀라는 부분이기도 했다. “고기를 먹고 싶은데 혼자 가면 2인분을 다 먹어야 돼서 못가”

극도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두 나라가 솔로 문화 시대에 접어드는 국면이란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눈치 보며 살아온 삶에 지친 걸까. 무엇이 그렇게 만든 걸까. 혹시 공생의 의미도 달라지는 걸까. 함께한다는 의미 부여도 점점 엷어지는 걸까.

2019년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이 29.8%라고 한다. 세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혼자 산다는 이야기다. 20년 후엔 35%를 넘어설 거라 예상된다. 올해 초 정부가 발 벗고 나서 ‘1인 가구 정책 TF팀’을 꾸릴 정도니. 이 정도면 시대가 바뀌는 전환점이라 봐도 무리가 없겠다.

16년 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시락바시락 봉지를 열어 주먹밥 베어 먹던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너는 유행의 선두 주자였던 거야. 조금 앞서갔던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