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회진] 다큐멘터리영화 진도[JINDO REQUIEM] 타이틀 작업을 하면서

다큐멘터리영화 진도[JINDO REQUIEM] 타이틀 작업을 하면서

 

원회진 (캘리그라퍼)

 

 

진도라는 섬, 그 특별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와 진도씻김굿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 진도 [JINDO REQUIEM].

사람이 산다는 것이 신이 나고 신바람이 나야 하는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이 흥이 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죽음이, 그것도 너무도 어린 생명들을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고 아니 차마 떠나보내지도 못 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진도 타이틀 글씨를 쓸 준비 작업을 하면서 이미지를 잡아가는데,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마음이 무겁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했다. 지금까지 마음 한 켠으로 밀어 두었던, 눈감아 버리고 싶은 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슬픔이나 회한만이 아닌 따뜻하고 밝고 맑은, 하늘과 사람과 영혼, 땅과 바다, 이 세상을 ‘진도’ 두 글자에 담아 보려고 노력하였다.

진도의 한글 타이틀과 전각 작업은 하늘과 사람(망자, 무당, 남겨진 사람들), 땅(진도, 바다)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기본 축으로 구성하였다.

‘진’자의 초성’ㅈ’은 씻김굿을 하는 ‘무당’의 소맷자락과 하늘로 향하는 깨끗이 씻긴 ‘영혼’을 표현했다. ‘도’자는 진도라는 특별한 섬, 모음’ㅗ’는 출렁이며 변화무쌍하면서도 잔잔한 바다의 느낌을 살려서 썼다.

여러 서체를 혼합하고 다양한 선을 사용하여 글씨에 표정을 담고 독특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한글과 영문, 전각이 어우러져 ‘진도’ 타이틀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진도 한글 타이틀 시안

 

 

한글1은 ‘진도’ 두 글자를 세로로 배치하여 생과 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인 진도라는 특별한 섬의 느낌을 담았다.

한글2는 판본 필사체와 궁체를 혼합하여 글꼴을 구성하였다.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품어 내는 섬 진도를 강인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한글3은 바람이 불고, 씻김굿을 하는 당골의 소맷자락이 날리고 씻겨진 넋이 떠나가는, 꽃이 피어나고 파도가 치는 진도의 사계를 담고자 했다. 필자가 느낀 씻김굿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글4에서 ‘도’자의 모음’ㅗ’는 인간 군상들이 부대끼는 것 같기도 하고, 진도소리의 파장 같기도 하고, 파도가 치는 것 같기도 하다.

 

진도 전각 시안

 

 

전각1은 한글 ‘진도’를 한자 ‘무속 巫(무)’와 유사한 형태로 구성하였다.

전각2는 씻긴 영혼이 속박에서 벗어나 하늘로 향하는 느낌으로 형상화하였다.

전각3은 ‘진도’ 두 글자를 세로로 배열해서 한반도 지형의 느낌으로, 음양각 기법을 혼용해서 재미있게 새겨보았다.

전각은 돌에 직접 새겨서 이미지를 완성하였는데, 전각의 특징인 붓맛, 칼맛, 돌맛을 살리려고 애썼다.

 

진도 영문 타이틀 시안

 

 

영문1은 고전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돌에 새겨 살려 보았다.

영문2는 어린 생명들을 비명에 보낸 복잡한 마음과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서 귀여운 느낌을 기본으로 변화를 주어 썼다.

영문3은 진도씻김굿의 절제된 춤사위와 생과 사의 단절을 강렬한 선과 비백(갈필, 군데군데 먹이 묻지 않은 빈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영문타이틀 시안 작업을 할 때는 영문 타이포그래피와 차별되는 캘리그라피만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글을 마무리하며.

천도 의식은 죽음이라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받아들이기 위한, 어쩌면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떠난 사람을 잘 위로하고 떠나보내야 남은 사람들도 죽음의 충격과 공포를 극복하고 슬픔을 넘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그 단계를 다큐멘터리영화 진도를 통해 풀어내리라 생각해 본다.

바람에 나부끼고 자유롭게 훨훨 하늘로 날아가는 진도 타이틀 글씨처럼, 짙푸른 바다에서 건져내어져 깨끗이 씻긴 영혼들이 저승길로 잘 인도되기를……

진도 타이틀 작업을 통해 이렇게나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 본다.

작업 기간 49일, 이 원고를 마무리 하고 있는 2020년 4월 16일… 우연인 듯 의미를 가진 생과 사를 가르는 숫자들의 조합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삶과 초월적인 세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유산인 진도씻김굿을 기록으로 남기는 특별한 작업에 타이틀 글씨를 쓰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예술을 포함하며 제7의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라는 매체의 타이틀 작업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언젠가 먼 훗날의 일로 꿈꾸던 것들을 실현하게 이끌어주시는 두 선생님, 연출가 유동종 선생님과 캘리그라퍼 오민준 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