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환] 한 성직자의 침착과 간절함

한 성직자의 침착과 간절함

 

오민환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연구실장)

 

 

코로나19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국가톨릭교회가 사순절임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미사 중단을 알렸다. 로마 바티칸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예식 중에 가장 핵심인,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 예절도 신자들 없이 거행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폐 절제 수술을 받았던 83세의 교황이 올해에는 왠지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이고, 지난달에는 심한 감기도 앓았다고 해서, 코로나 사태 이후로 그의 근황을 알리는 외신을 자주 뒤져본다.

교황으로 선출된 날, 그는 ‘세상의 끝에서’ 왔다면서,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길을 걷겠다며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가진 사람은 역대 교황 중 그가 처음이다. 2014년 그 더웠던 8월 중순,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했다. 그는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는 말을 남기며 자신이 노란 리본을 떼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그의 말은 돌 같이 굳은 심장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커다란 울림이 되었다.

한편 최근 영화 <두 교황>을 통해서도 그의 개인적 고뇌와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1976-1979년) 시기, 군사독재정권의 인권 유린과 공포 정치에 침묵하며 교회를 지키려 했다는 자기 고백이 나온다. 그 야만과 폭력에 침묵했던 자신은 교황의 자격이 없다 했지만, 그는 교황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작은이들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고,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한 세상을 질타하고,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모든 피조물의 ‘공동의 집’을 돌보자며 생태학적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세상의 끝에서 와서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나가 양들의 냄새를 맡고자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눈길을 끌었던 두 동영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2016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방문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a4co_GIfw

이날 카메라에 잡힌 교황의 모습은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는 듯 했다. 굳은 표정에 느린 걸음, 침묵으로 어둠의 자리를 걷던 교황은 총살터에서 촛불을 켜고, 막스밀리안 콜베 신부가 갇혔던 지하 감방으로 향했다. 당시 나치는 수용소에서 한명이 탈출하면 그 벌로 열 명을 처형했다. 그 열 명에 지목된 한 수감자가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면서 울부짖었다. 콜베 신부는 그를 대신하여 자신을 죽여 달라고 자청하며 나섰던 인물이다.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서 아사형을 받던 콜베 신부는 다른 동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2주 동안 버텼고, 나치는 마침내 콜베 신부에게 독극물을 주사하였다. 1941년 8월 14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75년 뒤 바로 그 지하 감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침묵의 기도를 올렸다. 그 침묵은 그 어떠한 언사보다 위대해 보였다.

 

<지난 3월 15일 오후, 텅 빈 로마 시내를 지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또 하나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uRaheEUq3A&feature=emb_rel_end.

코로나 이탈리아를 덮친 지난 3월 15일 주일 오후, 교황은 단지 최소한의 수행원만 대동한 채 평소 같으면 순례자들로 북적거릴 베드로 광장을 지나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과 마르첼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로마 4대 성당 중의 하나로, 유명한 전설이 있다. 352년 로마 귀족 부부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아침에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으면 원하던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은 8월 6일 한 여름이었다. 부부는 리베리우스 교황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공교롭게 교황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런데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로마 스퀼라노 언덕에 하얀 눈이 내려 있었고, 그곳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지었다.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있는 곳으로 전염병이 심각하게 돌 때마다 역대 교황은 이곳에서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여, 이 전염병을 멈추어 주소서”라며 기도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성모 마리아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마르첼로 성당은 15세기부터 전해져 오는 나무 십자가가 있다. 1519년, 마르첼로 성당 전체가 화염에 쌓여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나무 십자가는 불에 그슬린 흔적도 없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로마에 페스트가 무섭게 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 신자들은 십자가를 들고 로마 시내를 돌며 기도를 했고, 페스트는 차차 종식되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봄비가 내리던 지난 3월 27일, 이 나무 십자가를 텅 빈 베드로 광장에 세우고 코로나 종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광장에 홀로 선 교황은 고통과 두려움, 허무가 우리를 압도하지만, 함께 노를 저어야 파선하지 않는다며 연대를 촉구했다.

 

<산 마르첼로 알 코르소 대성당 십자가 아래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거대한 장례식장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이 재앙 속에서 현혹적이고 기만적인 탐욕의 시스템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어떤 구원의 계기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가난하고 작은이를 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서 간절함과 침착함을 읽는다. 그 간절함은 콜베 신부의 사랑과 환대일 것이며, 그 침착함은 현대의 우상을 넘어 진리를 향하는 마음일 것이다. 독일어로 침착을 가이스테스게겐바르트(Geistesgegenwart)라 한다. 정신(Geistes)이 있음(Gegenwart)이라는 뜻이다. 교황은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 우울한 일상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말라고 무언의 교훈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이글을 쓰는 동안 바티칸 국무원에서 일하는 56세의 몬시뇰(고위 성직자)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성직자는 교황과 같은 숙소를 쓰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교황은 코로나 테스트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우울은 앎을 위하여 세계를 폭로한다. 그러나 그 끈기 있는 침잠은 죽은 사물을 명상 안으로 받아들여 구제한다.”(발터 벤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