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 그 여자의 난간

                그 여자의 난간

                                                                                             양선희(시인)

 

 

그 난간에 조롱 있다

그 여자 조롱 속에 사는 새에게 노래 가르친다

그 새 부를 줄 아는 노래 다채롭다

그 난간에 화분 있다

야자열매 반으로 갈라 만든 화분

그 여자 꽃들에게 이야기 들려준다

한국 시간 베트남 시간 나란히 적은 얘기

손이 큰 엄마 얘기

아버지가 잡아오던 물고기 얘기

동생이 공들여 수놓는다는 마을 얘기

한국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 얘기

그 난간에는 크게 웃는 아이 둘 있다

조롱을 툭툭 치며 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꽃말 건넨다

두 나라의 말을 하는 남매 조롱 위로 쑥쑥 솟아오른다

 


 

(시작메모)

낡은 어린이놀이터가 폐쇄된 아파트에 잠시 산 적이 있다.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라 엘리베이터가 없는데다 재개발 협의가 진행 중이라 망가진 시설들의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 아파트 단지를 한 번 도는데 15분이 걸렸다. 몇 바퀴만 돌면 충분히 운동이 되어 매일 두어 번씩 산책을 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심은 나무들이 우람할 뿐만 아니라 봄꽃과 여름 녹음, 가을 단풍이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처럼 산책을 하다가 베란다 창에 명화가 인쇄된 달력을 몇 장 붙여 놓고, 그 난간에 빨간 꽃이 핀 화분을 내어 놓은 1층 집을 발견했다. 나중에는 인사를 트고 보니 베트남에서 시집을 와 남매를 낳은 새댁이었다.

들이치는 비에 젖은 달력은 새것으로 곧 교체가 되고는 하던 그 집을 만난 인연 덕분에 이 시를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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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약력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4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방송작가 활동 시작

1987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시로 등단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집으로 가는 길’ 당선

 

시집

-일기를 구기다(생각하는 백성)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산문집

-엄마냄새(랜덤하우스코리아)

-힐링커피(랜덤하우스코리아)

-커피비경(알에이치코리아)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우리문학사)

 

영화 극본

-첫사랑(이명세 감독과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