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근] 덕분에 오늘을 삽니다

덕분에 오늘을 삽니다

 

송일근 (농부, 전남 담양군 대덕면 무월리)

 

 

이맘때면

우리집 처마에 곶감이 주렁주렁 내걸릴 풍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봉시 감을 따서 손으로 일일이 깎아 끈 달아 내걸기까지 아내는 신명을 낸다.

내 보기에 이쁘면 넘 보기도 이쁘다며 날마다 날마다 쳐다보면서 좋아라 한다.

그 고운 풍경을 만든 아내의 노고에 답을 하느라 가을볕과 바람을 맞아들여 제 몸의 부피를 줄여 가며 곶감이 되어 가는 시간을 나는 고스란히 선물로 만난다.

올 한 해를 지나면서 참 많은 일들이 내게로 왔었고 나는 그 일을 지나왔다.

 

 

30여 년 농사를 지으며 태풍, 가뭄, 홍수, 병충해 등 참 다양한 많은 일들을 지나는 중에 올 가을걷이를 하다가 나는 잠깐 멈춤을 만났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콤바인 기계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나는 튕겨져 나가 아래 논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순간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아내는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떻든 집에 와 놀란 몸과 마음을 이불 위에 부려 놓았다.

몸으로 확인되는 고통에 앞서 마음에 들어온 두려움과 놀람이 더 크게 나를 건드렸다.

 

 

작년 이맘때, 아내는 내게 멋진 회갑연을 열어 줬다.

지인들을 초대해 축하의 자리를 만들면서

 

덕분에

오늘을 삽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문구의 스티커를 붙인 꾸러미를 오신 손님들께 선물로 드리는 아내를 보면서

요즘 세상에 무슨 회갑연인지… 하는 생각이 조금은 남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오시는 손님들께도 알리지 않은 채 생일상을 준비한 아내의 속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저녁 아내가 내민 선물을 받고서다.

두어 달 동안 밤을 새다시피 방문을 닫고 바느질 작업을 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를 위한 생일 선물이었던 것은 전혀 몰랐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든 책을 나는 날마다 찬찬히 들여다봤었다.

그리고 아내의 ‘덕분에 오늘을 삽니다.’ 라는 말을 무슨 주문 외우듯 외웠던 일들이 벌써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

나는 오늘도 덕분에

햇빛 덕분에, 바람 덕분에, 눈비 덕분에, 뙤약볕 덕분에, 태풍 덕분에, 농사일 덕분에, 사람들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다.

덕분이다.

덕분에 그 많은 일들이 내가 표현해 내고 싶은 모습으로 작업으로 이어져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덕분에 알았다. 콤바인이 뒤집어지는 큰 사고도 지나고 보니 올해 내가 만난 일이었다.

 

 

나는,

날마다

안고, 서고, 눕고, 싸고, 먹는 덕분에 오늘을 산다.

곶감이 잘 되어 가고 있다.

내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