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정] 북촌시네마 이야기-우담바라를 보았다!

북촌시네마 이야기-우담바라를 보았다!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

 

 

한 달에 한 편씩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 감독이 대화(GV)를 나누는 북촌시네마가 10월로 14회를 맞이한다. 북촌시네마에는 매 회 상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것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분들이 함께한다. 북촌시네마도 코로나 상황의 고비 고비마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반복한다. 코로나 시대 관객들은 어떤 영화를 원하는 걸까. 비대면 세상에서도 북촌시네마를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영화전문가도 아니면서 북촌시네마 GV를 진행하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영화가 가지는 놀라운 힘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북촌시네마 13화(畫)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통해 우리를 울고 웃게 한 거장들에 대한 작은 헌사를 대신할까 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배 안에서 반복된 이 한마디가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음이 드러났을 때, 배 바깥에 있는 우리들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건지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그 때, 젊은 영화학도는 한달음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동빈 감독이다.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는 다양한 시각과 다큐들이 있지만, 북촌시네마 제1화인 <업사이드 다운>은 감독의 그런 열정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과 자발적인 재능기부가 일구어낸 영화이다. <업사이드 다운>은 이 행동하는 젊은이의 삶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 같다. 미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 한 채 한국에 남아 기록하고 있는 차기작이 궁금하다.

다큐의 힘은 감동적인 삶에서 나온다. 파란 눈의 정일우 신부는 1970-80년대 산업화의 개발과 독재로 가난한 이들의 삶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현실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청계천 빈민들 사이로, 상계동 철거 현장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과 평생을 살았다. 상계동 철거 현장에서부터 신부의 곁을 지켜 왔던 김동원 감독에게 <내 친구 정일우>다큐는 신부에 대한 기록이자, 추모이고, 기억의 확장이다. ‘다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감독 역시 신부와 닮았다. 강단을 떠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록한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면서. 육아, 학위, 강의가 전부였던 나의 맹렬한 이삼십 대를 이토록 부끄럽게 만든 영화는 다시없을 것 같다.

 

북한체제에서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올드 마린 보이> 박명호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치밀한 준비 끝에, 온 가족을 태우고 가재도구들을 배에 가득 실은 채 하루 만에 남한으로 넘어 왔다. 오늘도 그는 수심 30m 해저에서 해산물을 잡아 올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심해잠수부를 한다는 <올드 마린 보이>를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제2탄으로 만들고 싶어 한 듯하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탈북민은 ‘황색흑인’이라는 메시지를 한국사회에 전하고자 한다. 어디서나 그는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 영혼의 고결함을 뿜어내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 <서칭 포 슈가맨>의 로드리게즈는 미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해 묻혀버린 자신의 노래가 남아공의 시대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그야말로 전설의 ‘슈가맨’이 된다. 남아공 여행 중에 우연히 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전해들은 말렉 벤젤룰 감독은 미국으로 슈가맨을 찾아 나선다. 30대의 젊은 감독은 이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다큐로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상을 연달아 수상한 뒤에 유명을 달리했다. 올해로 여든을 훌쩍 넘긴 슈가맨은 지금도 순회공연을 하고, 공연 수익료 전액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여전히 허름한 옛집에서 산다.

다큐의 주인공이 매력적이면 감동의 크기는 배가 된다. <카운터스>는 일본 전역에서 극렬한 혐한시위에 맞서 반혐오·반차별 운동을 펼친 전설적인 시민운동 ‘카운터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인공 ‘다카하시’는 비열한 혐한 시위자들에 맞서 몸으로 혐한시위대를 막고 물리적인 충돌도 불사하는 ‘남자조직(오토코구미)’을 만든다. 몸싸움을 도맡는 야쿠자출신의 다카하시는 혐한시위자들에게 위협적이었지만, 카운터스 시민운동가들에게도 불편한 존재였다. ‘카운터스’가 일본에서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끌며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낸 사이, 다카하시의 삶도 달라졌다. 여전히 오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오후에는 카운터스에 합류하는 그였지만, 불행하고 고독한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회상하고, 야쿠자로 살아온 삶을 참회한다. 오키나와 시민운동에 합류하다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지만, 다카하시의 카운터스 활약은 일본의 시민운동이 좌우익, 학력, 출신과 관계없이 인간애에 기초한 시민운동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일조했다. 혐오시위자들과 야쿠자 세계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이일하 감독의 차기작은 LGBT(성소수자)이야기이다. 그는 이번에도 다카하시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을 만난 게 틀림없다.

다큐로 만들어야 한다는 감독의 절박감과 열정은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바꾸기도 한다. 1951년에 낯선 폴란드 땅에 한국전쟁 고아 1,500명이 도착했다. 사회주의 전사로 키워내기 위해 김일성이 보냈던 그 아이들은 8년 후에 전원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현지에서 병사한 단 한 명만 빼고. 낯선 이름의 묘비명 ‘김귀덕’을 추적한 폴란드 언론인의 책과 다큐는 북송된 아이들이 한반도 전역의 전쟁고아임을 밝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배우인 추상미 감독은 이 사실을 현장의 영상과 인터뷰로 재확인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폴란드 선생님들도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고아들이다. 뜨거운 인류애가 말없이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재미변호사 전후석은 쿠바여행 중에 우연히 헤로니모 후손과 만난 뒤에 <헤로니모> 제작에 뛰어 들었다. 1905년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간 조선인들. 5년 뒤에 일제가 한국을 병합하자 돌아갈 조국이 없어진 이들은 쿠바의 애니깽 농장으로 향했다. 매 끼니 한 숟갈씩의 쌀을 모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낸 임천택 옹, 쿠바 한인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고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했던 아들 헤로니모, 얼굴도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코리안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헤로니모 후손들의 이야기가 감독의 쿠바 여정과 더불어 날줄과 씨줄로 연결된다. <헤로니모> 다큐는 한국 근현대사와 20세기 세계사의 맥락과도 잘 어우러진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생생한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책상머리 역사학도는 평생 ‘사실’을 붙들고 연구해도 개설서 한 줄을 바꾸기 어렵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사실’에 자신의 본업을 뛰어넘고, 역사학의 높은 벽까지도 훌쩍 넘은 두 감독의 열정이 경외스럽기만 하다.

 

 

고잉 홈- 잊고 사는 근본을 기억하게 하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노스승 ‘우르갼’은 살아있는 부처, 린포체(Rinpoche)로 공인받은 소년 ‘앙투’가 자신의 전생 사원으로 찾아나서는 길<Becoming Who I Was>에 묵묵히 동행한다. 우르갼처럼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가. 맹귀우목(盲龜遇木)의 희귀한 확률로, 정말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앙투처럼 오로지 구도에만 매진할 수 있는가. 동행과 구도에 목마른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다큐이다. 이들을 기록하기 위해 십여 차례 걸쳐 해발 3500미터의 라다크에 가서 8년 동안 촬영했던 문창용 감독이다. 차기작은 인도네시아 쓰레기 매립장의 소녀의 <벗어날 수 없는 산>이라는데 개봉이 기다려진다.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은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고리로 연결된다. 크리스 조던 (Chris Jordon) 감독의 <알바트로스>는 자꾸 잊고 사는 우리의 이런 근본을 기억하게 한다.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을 뒤덮은 수만 마리의 알바트로스의 배의 사체가 플라스틱으로 꽉 차 있다. 충격적인 영상을 접하며 인류 모두의 집단 공모를 떠올린다. ‘우리가 자꾸 잊게 되는 근본을 기억하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인류가 이 사실을 함께 기억한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키워야 한다.’ 감독은 플라스틱으로 가득찬 알바트로스의 배를 연 순간, 머지않아 지구촌에 불어 닥칠 자연의 역습을 예견했다.

잊고 있던 근본으로 돌아가며, 현재의 나를 찾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따뜻하고 눈물겹다.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에서 탈북청년 박유성은 중국, 미얀마, 태국을 거쳐 온 자신의 탈북루트를 한국 청년들과 함께 다시 되밟아보는 여정에서 자신의 현재를 재확인한다. <테이크 미 홈>은 다문화 청소년 앙상블 ‘원 컨트리(One Country)’의 단원들이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선생님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음악여행을 떠난 이야기이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엄마의 나라가 제각각인 아이들은 고잉 홈의 여정에서 서서히 문화 충격과 성장통을 극복하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고잉 홈-잊고 사는 우리의 근본을 기억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코로나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가 뭘까. 칸느의 거장, 켄 로치감독의 <미안해요, 리키>의 리키는 비정규 계약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한 일자리가 급증하는 경제 현실에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사는 택배 노동자, 곧 우리의 모습이다. 과도한 노동시간, 최저임금, 보험 보장 등에서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받지 못하고, 개인의 삶과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모두를 잃어버린 현실에 대해 영화는 묻는다. ‘이 시스템은 지속가능한가.’

택배에 의지하며 사는 우리도 매일 느낀다. 과연 이 불공정한 시스템이 지속되어도 괜찮은 건지. 온라인 쇼핑이 폭증하는 상황에서도 촘촘한 택배망과 수많은 리키가 있기에 K-방역의 성공이 있다고들 한다. 택배회사의 방문메시지이자 영화의 원제목인 ‘Sorry We Missed You(부재중이라 배달완료하지 못했어요)’는 중층적이다. 분초를 다투는 택배노동자는 배달수수료를 받기 위해 배달을 완료해야만 한다. 사회구성원으로 공범이 된 우리는 리키의 고단함에 미안함을 전한다. 미안해요, 리키!

야구치 시노부감독의 <서바이벌 패밀리>는 코로나시대에 우리가 그리워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어느 날 전기가 끊기고 일상이 멈추자, 그 동안 멀어졌던 가족 간의 소통과 사랑이 서서히 되살아난다. 재난이 공포를 넘어 긍정과 희망과 웃음을 되돌려 주다니…역설적이고 오래된 미래인 듯 아날로그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거리두기와 일상의 봉쇄로 코로나를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 서바이벌 패밀리처럼 일상을 되찾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불가에서 우담바라는 삼천 년 만에 피는 희귀한 꽃이라지만, 실은 흔히 피는 아주 작은 꽃이라고 한다. 사람의 눈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뿐. 우담바라는 우리 곁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 있다. 삶의 거장들이 말한다.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근본으로 돌아가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은 커지는 일이라고. 코로나가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 전체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가 물러가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래도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들의 우담바라 이야기는 계속된다(THE SHOW MUST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