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화] 신음(呻吟)을 잘게 부셔 하나씩 일으키면?

신음(呻吟)을 잘게 부셔 하나씩 일으키면?

 

박진화 (화가)

 

 

새해 들자마자 뉴욕 챌시에 위치한 케이엔피 갤러리에서 개인전(2020.1.2~8)을 열게 되어 지난 12월 28일부터 1월 27일까지 꼬박 한 달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케이엔피 갤러리의 대표인 제이슨 형의 배려에서입니다. 뉴욕은 처음입니다. 역시 뉴욕은, 특히 모든 것에서 과거 유산들을 탁월하게 현재화시키는 문화력과 자본력에, 인간의 저의가 어디까지인지 새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생각도 많았습니다. 다음 노트는 그 한편의 단상들입니다. 이를테면 내 입장에서의 생각들인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나의 뉴욕 전시는 며칠 사이지만 시작과 끝이 달랐습니다. <만가(輓歌)> 연작 6점과 <풍경> 3점을 신작으로, 2006년 작품인 <춤> 연작 4점을 합해 총 13점으로 전시를 꾸몄는데. 첫눈엔 힘도 울림도 없었습니다. 갑작스런 촌스러움에 내가 먼저 불만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의 심정을, 초라함과 씁쓸함을 한두 마디 말로 표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전시 끝 무렵엔? 그림들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시골 아이들처럼 쌩쌩함이 살아났습니다. 전시 결과는? 마치 승인받은 기분이랄까.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내 붓의 의미가 새로 보였고 필연성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림의 당위도 더 선명해졌고 튼튼해졌습니다. 처음이지만 이번 뉴욕 전시는 내게 긴요했고 적절했단 생각입니다.

 

 

그림을 하는 나의 문제의식은 인간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 우선입니다. 존재의 슬픔을 어찌 나눌 수 있느냐의 문제의식입니다. 인간의 미학적 진실은 나락(那落)의 처지에서 생깁니다. 한반도의 분단 의식에 찌들은 깊디깊은 무기력의 심연을 상상해 보십시오. 존재의 평등함은 없습니다. 본연(本然)의 슬픔이 거세된 발랄함은 허깨비일 뿐이지 않을까? 당연히 붓의 이성(理性)은 삶의 고통과 사랑의 문제를 넘어서선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림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난맥의 현실태이자 자기 구원의 방편일 뿐이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뉴욕은 확실히 혼을 빼는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전시 개막 며칠 후, 맨해튼 한 복판을 지나던 때인가? 문득 스친 말이 있었습니다. ‘해염(解染)’입니다. 흩어져 물든다, 혹은 해체되어 스민다, 정도의 뜻인데, 왜? 뉴욕에서 불현 듯 그 ‘해염(解染)’이란 말이 들렸을까? 아마 맨해튼의 엄청난 기에 눌려 몸과 마음이 흐트러진 나를 위로키 위한 자구적 계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더라도 왜? 하필 맨해튼 한 복판에서 ‘해염(解染)’이었을까?

삶이 생각의 방법을 모색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라면? 삶을 사는 데는, 마땅히 그 방법과 요령과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돌아보자면 지금껏 나의 의식은, 우리 역사와 땅의 의식에 포섭되는 걸로 믿어 왔습니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밖에 없고, 분단의 고통도 나의 고통임을 당연시해 왔습니다. 나의 그림 에너지 또한 이 땅이 부여해준 힘이자 지혜이길 바랐습니다. 나의 눈은 항상 우리 현실의 눈이길 소원했고, 의식 또한 그만큼의 역사의식이길 소망했습니다. 지금껏 내 붓의 이념이 된 ‘나는 나만이 아니다’라는 화두는 그러므로 필연인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그 심지(心地)에 균열이 생긴 듯했습니다. 아무리 의미가 클지라도 그건 결국 내 욕망에 불과한 것이라는 반성이었습니다. 내 붓의 과욕(過慾)이야말로 자칫 심각한 망상일 수 있다는 성찰이었습니다.

 

 

그러나? 욕심 없는 화가는 죽은 화가입니다. 붓의 힘이 욕망의 에너지라면 결국 그림은 욕망의 난제를 어찌 품느냐 일 것입니다. 망상을 물리칠 이성의 요구입니다. 그러니까 ‘욕망이란 통째로는 안 되는 거다! 쪼개 나누어 스며들라!’ 이 요구와 지침이 바로 ‘해염(解染)’의 이유였지 않았나? 그리 생각합니다. 맨해튼의 무지막지한 위용도 잘게 쪼개져 응집된 욕망의 부피에 다름 아니더라는 것. 그랬습니다. 맨해튼뿐 아니라 뉴욕 전체가 ‘해염(解染)’의 현장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낱낱이 흩어져 모든 현상(사물)들에 다시금 물들어 일으켜진 상태가 이제껏 인간 역사의 엄연한 현실이라면? 내 몸이나 의식도 마땅히 잘게 부셔져 어딘가에 스며 물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말로 새롭게 챙길 내 그림의 내용이 아닐까?

또 하나 있습니다. 눈을 씻고 본 전후와 비견되는 얘깁니다. 뉴욕의 첫 흥분이 가시지 않는 상태에서, 모마(MOMA)에 갔습니다. 엄청났습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찬란하고 또 찬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어느 작품이건 정작 창작의 고통이 안 보이더란 것입니다. 왜? 이 모든 작품에 작가의 통증이 없을까? 의아했습니다. 때문입니다만 며칠 후, 모마(MOMA)를 다시 찾았습니다. 다시금 차분하게 확인해 봤지요. 거듭 보니 달랐습니다. 비로소 작품들의 신음(呻吟)이 들렸습니다. 다만 그 신음들이 서로를 부추겨 일견 찬란함으로 보일 따름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어떤 기술력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일은 인간적임을 감추기 위한 일도 포함시키더란 것입니다. 연속된 두 번째 모마(MOMA) 관람은 내가 생각한 예술성의 확인이자 증명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뉴욕의 핵심은 활용(活用)되는 정신입니다. 모든 정신은 활용의 수단이더란 것입니다. 예술 또한 그 목적과 궁극이 ‘쓰임’이었습니다. 그 쓰임을 위해 창의력을 기꺼이 소모시키는 문제였습니다. 예술이든 정신이든 우선 쓸 수(모) 있음에 포커스가 있더라는 것. 소비하지 않고 살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생리, 그 생리의 맨 상층부에 예술이 버티고 있더라는 것. 틀림없었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미학일지라도 무용한 상태로는 가능치 않다는 엄연한 사실. 그러면 왜? 여태 나는 그처럼 당연한 소비 의식이 부족했을까? 그겁니다. 그러한 보편적 실상에 나는 지금껏 서툴렀습니다. 이제야 세상을 바로 보게 된 건가? 소비가 모든 미학(정신)의 원천이자 목적일 수밖에 없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이번 뉴욕 전시의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인 바,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항상 고통과 신음(呻吟)이 따릅니다. 내 경우 그림은 아픔의 산물입니다. 그림의 특성은 무지합니다. 경계가 없는 관점이기에 그렇고, 어찌해도 자기 한계를 숨길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리는 신음이 쌓이고 쌓이면? 권태가 다른 게 아닙니다. 소외나 무기력도 권태의 일종이니까요. 그림의 언어는 번역해야할 장애가 없습니다. 전 인류가 하나로 다 통합니다. 망망대해의 무지함이 권태로울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여하간, 그리는 고통과 신음을 잘게 부셔 하나씩 일으켜 나간다면? 그렇습니다. 우선 나의 믿음이자 위로가 먼저입니다. 붓의 의미도 마음의 향방에서 일어납니다. 왜? ‘해염(解染)’이 뉴욕 맨해튼 복판에서 들렸던가? 그 생각을 요즘도 굴려 보고 있습니다. ‘해염(解染)’은 내가 우선 나부터 위로하고 믿으라는 계시였을까?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예술도, 종교도, 사상도…, 남과 북, 밤과 낮, 선과 악의 경계들도…, 다 하나씩 해체하여 내 손으로 물들이다보면? 캔버스에 낭비하다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개벽(開闢)’이 다른 게 아니겠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넓고 넓은 세상, 그 쓰임의 부피! 이렇게 뉴욕 생각을 꺼내 보니까, 2016년 섬 작업실 이후 다소 느슨했던 붓에 다시 뭔가가 들어찬 기분입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현실에서 내 자신부터 먼저 위로받지 못한다면? 나의 어떤 그림도 현실을 등진 채 당위를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지난 20세기 미술 정신이자, 거기에 갇힌 내용이라도 말입니다. 좌우간 뉴욕 개인전은 플러스였습니다. ‘해염(解染)’의 사색은 뒤로 하더라도 미국과 나를 정확히 떼어 놓는 결실을 맺었으니까요. 나는 맞고 미국이 틀리다는 것도 아니요, 미국이 맞고 내가 틀리더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앞으로 특히 수운(동학)사상의 ‘시천주(侍天主)’와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대목을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겠다! 박경리 문학에도 더 밀착해 보자! 이런 결심 또한 성과일 것입니다. 끝에, 요즘 다시 읽고 있는 박경리 <토지>의 한 대목을 붙입니다. 내 붓이 인간만이 아닌 땅과 하늘을 동시에 같이 보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 보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게 어디 있나.”

2020년 2월 15일 박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