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호] 노마드 자영업자의 눈치보는 저녁 걷기

노마드 자영업자의 눈치보는 저녁 걷기

 

박민호(잔소리 약국 약사)

 

 

퇴근길 저녁 삼청동에서 성북동 거쳐 삼선교까지 걷습니다.

중간에 와룡 공원도 지나가지요.

어느 날 와룡 공원 성곽 길 계단에 누군가 분필로 그려놓은 걸 봤네요.

 

 

이게 뭘까?? 아 이 자리에서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는?

찍어봤습니다. 이렇게 나오는군요.

 

 

야경 참 예쁩니다.

왼쪽 성북동, 오른쪽 혜화동입니다.

가운데는 걷기 종착지인 삼선교가 되겠네요.

기억하기 위해서든 다른 이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든

분필로 저리 표시해 놓은 사람 마음이 좋습니다. 친구하고 싶지요.

좋은 마음으로 그린 그림 그리고 예쁜 야경.

걷다가 이런 장면 만나면 어떤 생각 드시나요.

높은 곳 올라 너른 들녘 바라볼 때처럼 호연지기가 올라오나요.

반짝이는 불빛들 보면 괜히 낭만적이 되시나요.

삼청동에서 성북동까지 와룡 공원, 서울 성곽 따라 저녁 걷기,

요즘 표현으로 ‘갬성 쩌는’ 일임엔 틀림없으나

또한 저는 현실적, 조직적 행위로서 걷기 하고 있음을

밝히고 싶군요.

일단 건강을 위해 걷습니다.

운동은 생활 루틴으로 삼아 적당한 강도로 늘 하는 것이 최선이지요.

일부러 누구 보여줄 일도 아니고 폼나게 할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성북로, 삼선교 일대 상업 부동산 현황을 눈으로 파악합니다.

공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요. 온라인 시장의 파워가 광속으로 커지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상가주들, 임차인들 많죠.

상권 전체 묶어 보면서 상가 공실 확인하고

배후 인구 변화 추이, 재개발 변수,

그 외 병원, 약국 개폐업 관련 사항도 나름 체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현실적입니다.

제 저녁 걷기에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부분이 10%라면

그 외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으로 채워져 있는 거죠.

몽골 유목민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각과 후각이 발달했다지요.

빌딩 골짜기 사이 피 터지는 경제 정글에서

언제 건 어디로든 밀려날 수 있는 노마드 자영업자는

상권 보는 눈치라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우물 자리, 천막 칠 자리 정도는 늘 봐 둬야 합니다.

가끔 남산 순환로도 걷지요.

남측 순환로를 걷다가 이태원 쪽으로 내려가기 직전 전망대를 만납니다.

거긴 보통 야경이 이렇습니다.

 

 

압도적이지요. 보이는 부동산 시가 총액이 압도적입니다.

왼쪽 저 멀리 롯데 월드 타워가 보이고 오른쪽 한남 대교 쇳물처럼 흐르는

자동차 행렬이 보입니다.

한강 건너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 반포동 비싼 땅들이 있네요.

원래 타고난 부자라면 모를까 나중에 저 땅에 집을 얻고 건물을 얻은

사람들은 그 돈 벌기 위해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겐 그냥 아름다운 강 건너 얘기죠.

저기 저 강남땅을 갖기 전과 후의 삶은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하는 잔소리 약국은 돈 안 되는 자리에 있습니다.

돈 벌 생각 없냐는 소릴 아주 자주 듣지요.

동네 분들이 망할까봐 그렇게들 걱정하십니다.

 

 

여긴 왜 이리 약이 없어요 약국 맞나 물어들 봅니다.

전 꼭 필요한 약 다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약은 많이 팔아 돈 버는 단순 소비재라기보다

맞게 잘 써서 삶의 질 높이는 공공재란 얘기

강조하지요.

오남용 많은 광고 품목 빼놔도 필요한 약 다 있다고 합니다.

장사하려면 뭐든 많이 팔아서 남겨야지 약사님은 부자신가봐?

저 물론 돈 좋아하지만 일단 이 약국에선 아닙니다.

약사 일 내 마음껏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죠.

그래줘서 고맙다는 피드백도 종종 있지요. 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무슨 봉사 정신이 유별난 건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약사들이 이런 소신 약국 하고 싶어 합니다.

각자 나름 사정 탓에 못할 뿐이죠.

 

 

노마드 자영업자로 살려면, 상권 보는 눈치 길러야 한다 했지요.

그래야 현실적으로 버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머지는 자유로이 흐름에 맡기는 것이 최선인 듯해요.

강 건너 비싼 땅들은 내 삶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인식합니다.

굳이 삶에 무거운 짐을 실을 필욘 없지요.

아니 싣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좋구요.

재밌게 계속 일하려면 현실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선 인생이 무거워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북로 상권은 현실적으로 체크하면서

강남 금싸라기 땅에 대해선 도리질을 하고

남들처럼 하면 그래도 돈 번다는 약국 업종에서

안 벌려고 작정한 듯 거꾸로만 하는 제 행보가

때론 제가 봐도 괴이합니다. 청개구리도 아니고.

일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문제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대차 대조표를 쓸 때 수치상 보이는 것만으로

인생 플러스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해요.

재밌게 소신껏 제대로 하는 일이라면 어쨌든

저지를 만하지 않을까요. 은근히 플러스를 기대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가능할까요.

그런 계산하고 시작하려면 시작도 못했겠죠.

하지만 요즘도 저녁 걷기 하며 열심히 눈치는 보고 있답니다.

노마드는 안주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