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현] 허벌나게 개미진 ‘전라도의 맛’을 카메라에 담다

허벌나게 개미진 ‘전라도의 맛’을 카메라에 담다

 

 박규현 ( 전주MBC PD)

 

 

“맛있는 거 매일 먹어서 좋겠다.” 전주에 산다는 이유로 귀가 따갑게 듣는 말이다. 처음엔 구구절절 설명을 해댔지만 전주살이 15년이 훌쩍 넘어가면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여유가 생겼다. ‘전라도에서는 편의점 컵라면을 사먹어도 8첩 반상이 나온다’는 낭설이 생겨날 만큼 이름난 맛의 고장 전라도, 그곳에서 살기에 들을 수밖에 없는 기분 좋은 인사치레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흔한 인사치레가 의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전라도가 맛의 고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맛은 어떻게 이어 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파란 눈의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구한말 전주밥상

전라도의 맛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푸른 눈의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136년 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조선 땅을 밟은 조지 클레이턴 포크. 그는 전국을 돌며 조선의 정보를 수집하는 외교관이었는데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위치한 17개 군현을 돌아다닌 기록을 일기로 남겼다. 외교관의 방문에 지역에서 당연히 극진한 접대를 했을 터! 그러나 그 많은 대접 중 전라 감영에서의 접대상을 그는 더욱 특별히 여긴 듯하다. 그는 전라감영의 접대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것은 감사가 나를 위해 특별히 보내준 것이다. 이 밥상은 가슴까지 차오르는 엄청난 밥상이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엄청난 밥상‘라고 표현한 것도 모자라 자세한 그림까지 덧붙일 만큼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전라도 밥상. 이는 어느 날, 어느 한 순간 만들어진 맛이 아니었다. 특별히 준비한 밥상이었지만 일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식문화였다. 전라 감영이라는 ‘작은 왕국’에서 비롯된 문화로써의 한식, 산·들·바다에서 생산된 풍부한 물산, 기후와 토양이 낳은 탁월한 식재료 그리고 남부 시장이라는 거대한 물류 집약체가 모여 ‘전라도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맛의 더늠 도시, 다양하게 변주되는 맛의 천국

전라도는 음식에 대한 표현뿐 아니라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하다. ‘맛의 더늠’이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만드는 이와 먹는 이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것이 바로 ‘전라도 맛’의 특징이다. ‘전라도 손맛’ 또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사리 정의할 수 없다.

1926년 출간된 잡지 ‘별건곤’에는 팔도 여자 살림살이 평판기가 담겨 있는데 팔도 여성들의 특징을 「농사 잘하는 평안도 여자, 음식 잘하는 전라도 여자」라 평하고 있다. 「맛도 맛이거니와 상차림이라든지 만드는 모양새라든지 모두가 서울의 여자는 갔다가 눈물을 흘리고 호남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망칠 것이다.」라는 기록 또한 전라도의 여성의 요리 솜씨, 그 손맛에 대한 극진한 찬사다.

지금은 음식의 조리법이 평준화 되어, 레시피를 따라하는 음식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 음식을 먹어 본 사람만이 그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맛을 흉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먹어 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음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그 맛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라도가 맛의 더늠 도시가 된 것은,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를 자신만의 맛으로 재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카메라 렌즈 속에 담을 수 없는 맛이 더 많다.

‘전라도의 맛’을 프로그램화하면서 나는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것이,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화면에 비친 영상과 짧은 인터뷰가 전부였고, 맛에 얽힌 이야기들 또한 너무나 다양했지만 방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자르고, 또 잘라내야 했다.

자타공인 맛의 고장, 전라도! 한국 음식의 ‘맛의 보고’이자 ‘맛의 원형’이라 불리는 독보적인 미식 도시를 모두 담을 수 없음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조금이라도 ‘전라도의 맛’이 궁금해졌다면, 전라도의 손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망설임 없이 전라도로 떠나길 권한다. 맛집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전라도 특히, 전주의 경우 맛집을 꼽는 것보다 맛없는 집을 찾는 게 더 쉽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당신은 상상 이상의 전라도 맛을 접하게 될 것이며 나이 지긋한 주인장과 두어 마디 말을 섞게 된다면 사람 사는 맛 또한 보게 될 것이다.

 

 

 

<사진> 전주MBC 풍미오디세이 4부작 중에서….

<참고> YOUTUBE에서 ‘풍미오디세이’를 검색하면,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