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현] ‘당신의 두 손바닥은 따뜻한가?’

현존하는 육성자료로 재탄생한

문익환의 인공지능 목소리 <늦봄2020> 제작기

 

‘당신의 두 손바닥은 따뜻한가?’

 

 박규현(전주 MBC PD)

 

 

2020년은 여느 해보다 뜨거웠다. 코로나로 인해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답답함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늦봄 2020』을 제작하며 마주하게 된 역사가 나의 2020년을 뜨겁게 만들었다. 내가 마주한 역사는 과거의 ‘어느 날’이 아니었다.

 

다 알고 있다?

아니, 그건 섣부른 예단이었다

문익환 목사를 내세운 다큐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386세대 선배 몇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 흥미를 끌지 못할 거라 충고했다. 그 세대에게 문익환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목회자로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문 목사의 행적은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문익환 목사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문 목사의 단면 혹은 언론이 만들어낸 이념적 프레임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재야인사 혹은 빨갱이, 그것 외의 삶은 깡그리 소멸하여 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386 이후 세대의 인식이었다. 그들은 문익환 목사의 존재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 혹은 ‘문성근의 아버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과 헷갈리는 이도 있었다. 문익환 목사가 잊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꽃은 그냥 피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며 누리고 있는 자유, 인권, 평화,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는 문익환 목사처럼 민중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은 이들의 희생이 일군 결과다. 2018년 4월 27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분단의 세월만큼 깊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1948년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김구 선생 그리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었던 문익환 목사였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뿌린 평화의 씨앗은 여전히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문익환 목사의 손을 잡다

내가 그의 삶을 다루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잊히는 걸 원치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지워지기에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참된 목회자였고, 멋있는 아버지였으며, 좋은 남편이었다. 실천하는 시인이었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연설가였으며, 민중을 끌어안을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런 그를 시대에 묻힌 이름으로 남겨둘 수 없었다. 그래서 『늦봄 2020』을 통해 되살려내자 마음먹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기에 감독의 주관적 판단으로 다가섰다가는 자칫 영웅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레이션을 없앴다. 대신 문익환 목사가 쓴 글을 문익환 목사의 보이스 AI로 되살렸다. 시인이자, 연설가였던 문익환 목사를 되살려 최대한 문익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려 노력했다.

끝으로 『늦봄 2020』을 위해 함께 머리와 마음을 맞대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ttps://youtu.be/AqNOvqRwGJ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