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송희] 바코드_10대가 바라본 세상

바코드_10대가 바라본 세상

 

류송희 (KBS PD)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바야흐로 1과 0이 움직이는 세상을 살고 있다. 내가 속한 영상 산업에도 어느덧 AI의 바람은 불어와, 가장 ‘인간적’이어야할 내레이션마저도 자동으로 저장된 목소리로 배열된 채 방송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일상. 내가 알 수 없는 디지털 세계의 원리에 의해 내 삶이 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지배되는 날도 있다.

가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무심코 바라보는 ‘바코드’는 1과 0의 위력에 대해 각성하게 하는 계기를 던지곤 했다. 한 번의 ‘삑’소리로 존재를 가늠하다니.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 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2018년, TV 속에서 나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세상에 반응하는 10대들을 보았다.

1과 0을 흰색과 검은색,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으로 바라본 철학적 사유에 깜짝 놀라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바코드를 보며 든 생각이라니. 게다가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니. 선문답 같은 가사.

 

방송가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어른 흉내 낼 것만 같은 고등학생들의 랩 경연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느낌이었다.

김하온과 이병재라는 18살 동갑내기 고등학교 자퇴생들의 노래, ‘바코드’.

‘앞만 보고 살도록’ 가르친 어른들의 세상에서 ‘행복을 놓친’ 아이들.

 

네까짓 게 뭘 알아 행복은 됐어

내 track update되는 건 불행이 다 했어

잠깐 반짝하고 말 거야 like 바코드 빛같이

우리도 마찬가지

 

빛과 어둠이 서로 대화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랩.

‘죽음’을 생각한 친구에게 ‘명상’으로 이겨 낸 친구가 이야기한다.

 

남겨 줘 난 내게 사랑만 남겨 둬

우리 사이를 선으로 그으면 모양은 마름모

하나도 놔두지 않아 나쁜 건 아 근데

영감이 될 수 있는 건 인정해 야 나도 but

Boy you need meditation

 

‘사랑’만 남겨 두라는 마음의 모습은 ‘마름모’였다. 우리 사이를 가르는 직선이 아닌, 안으로 품어 주는 마름모. 근데 나쁜 것도 영감이 될 수 있으니 인정한다는.

그래도 ‘명상’으로 이겨 내 보라는 다정한 충고까지.

눈물이 났다. 그래. 아이들은 자라고 있구나. 서로 도우면서.

빛이든 어둠이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Meditation 내 텐션에 도움 안 돼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바코드를 횡단보도 삼아

뛰어서 벗어나야겠어 이 네모 밖으로 말이야

 

Depression은 내 텐션에 도움 안 돼

우울에 빠져 자빠져 난 시간이 아까워

바코드가 붙었다면 I’m on a conveyor

외부와 내부의 의도를 동시에 쥐고 달려

 

명상과 우울, 횡단보도와 네모, 외부와 내부. 흔해 빠진 바코드 위에서 세상의 깊은 진리를 찾아낸 놀라운 관찰력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바코드’는 예술적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영상을 보면 감동은 2배로 다가온다.

이 노래를 들은 후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두 소년의 영상을 알리려 노력했다.

특히 내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바코드의 빛을 보라고.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삑’하며 빛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에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삑 소리가 존재를 가늠하며 빛과 어둠의 경계를 가르고 있을지.

인생의 끝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을 테지만, 어쨌든 하루하루를 살아 내야 하는 고단한 우리.

10대부터 50대까지 이 두 소년에게서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를 받았다.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

이대로 사는 게 의미는 있을지 또 궁금해

 

첫 구절, 병재의 물음에 하온이 대답한다.

 

검은 줄들의 모양은 다 다르긴 해도

삑 소리 나면 우리 모두를 빛으로 비추겠지

 

나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이제 청년이 된 두 소년이 그들의 예민함과 영민함으로 세상을 계속 바라봐 주기를. 지치면 제발, 쉬어 가기를.

내 인생의 길에 그들이 빛으로든 어둠으로든 함께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고등래퍼>는 엠넷에서 2017년부터 방송해 온 고등학생 대상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김하온과 이병재는 시즌2에 출연해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바코드’의 영상은 동영상 사이트 어디서든 검색해서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