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비연 ​(동시인·싱어송라이터)

 

 

차양 밑 의자에 앉아 그가 물었다.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의 물음에 먼저 몸과 마음을 느껴본다. 뒤통수와 등 뒤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봄 햇살, 뒷목 솜털을 스치는 바람결, 온갖 산새 소리, 콧속으로 들어오는 맑고 쾌적한 공기. ‘음, 기분 좋아.’

이어 스캔하듯 주변을 둘러본다. 시골 풍경, 드넓은 하늘, 고라니가 살고 있는 대숲, 둘이 살기 적당한 집, 살구색 벽, 작은 마당, 바람에 흔들리는 풀, 고양이 두 마리, 차를 후룩거리며 대답을 기다리는 느긋한 당신, 그리고 현무암… 잉? 현무암?! 나는 문득 꿈에서 깨어난 듯 그에게 되묻는다. “여기가 어디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직 믿기지 않은 현실에 피식 웃고 말았다. 크크, 우리도 몰랐다. 우리가 덜컥 제주도로 이사를 오게 될 줄은. 사실 이런 현실을 직접 마주하기까지 둘 다 꿈에도 몰랐지. 몸과 마음이 힘들어 찾아간 명상센터에서 서로를 만나게 될 줄은, 사랑이란 걸 시작하게 될 줄은, 가난한 두 남녀가 밑천도 없이 살림을 합칠 수 있을 줄은, 그렇게 뜨겁게 쏟아냈던 서로의 일을 뒤로 하고, 육지를 떠나 덜컥 제주도로 이사를 오게 될 줄은.

꽤 오랜 세월을 도시에서 살았다. 연극을 연출하던 그는 서울 대학로 근처에서, 동시를 쓰고 공연을 하던 나는 광주와 서울, 일정이 있을 땐 각 지방 대소도시를 돌아다니며 굶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도 휴식기엔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밥벌이를 했다. 혼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생에 결혼이나 돈, 아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 서로의 계획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를 모른 채,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던 우리는 각자의 사연으로 같은 해, 같은 곳에서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우연히 한 날, 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서로를 봤고, 서로를 알아보게 됐다. 서로의 계획에 ‘함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계속 옆에 있고 싶었다. 이런 게 사랑인지, 잘하는 건지,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덜컥 살림을 하나로 합쳐버렸다.

그의 서울 짐을 박스 하나로 정리해 광주로 내려왔고, 내가 살고 있던 공간에 말 그대로 서로의 살림을 하나로 합쳤다. 입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었지만, 두 명의 월세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밥상에 밥그릇, 수저 한 쌍만 더 얹으면 되니 별다른 밑천이나 큰 소득 없이도 새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그렇게 10평 남짓한 좁은 원룸에서 고양이 조르바와 함께 셋이서 복닥거리며 살다가 모든 살림을 1톤 트럭 한 대에 정리해 제주도로 들어왔다.

 

 

글로 쓰는 건 이리 간단하지만, 사실 이사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고, 돈을 마련하고, 천 권이 넘는 책과 수천 벌의 옷가지, 십수 년의 살림을 버리고, 정리하고, 꾸리고, 옮기는 모든 일이 불과 2주 만에 이뤄졌다. 지금 생각해도 도대체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잔금을 마련할 수 없어 이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할 무렵 겨우 돈을 빌렸고, 이삿짐 운반부터 고양이를 섬으로 데려가는 것이며, 만만찮은 이사 비용까지 이래저래 막막하던 차에 트럭을 운전하는 친구가 나타나 짐을 싣고, 나르고, 배를 타고, 푸는 것까지 자기 일처럼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투성이였는데, 도와주신 이들 덕분에 기적적으로 모두 현실이 됐다.

사실 저 깊은 마음은 알았을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이 집이 우리 집이 될 거라는 걸. 또 언젠가 제주에서 살게 되고, 시골에서 고양이와 함께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우리가 그때 서로를 알아보고, 옆에 계속 있게 된 것처럼. 겉에서 봤을 때는 ‘함께’라는 계획이 없어 보여도,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실로 ‘사랑’을 원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마음을 따라 살다 보면, 진짜 ‘마음대로’ 살 수 있음을.

그렇게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흐르다 보니 흘러 흘러 제주도에 이르렀다. 도시에서처럼 아무 때고 편의점에 갈 순 없지만, 언제고 빈 하늘과 푸른 숲을 볼 수 있고, 집 밖에만 나가면 제주도가 있다.

비록 연세이지만 꿈꾸던 시골집에 살면서 더욱 자유로운 조르바와 ‘마당라이프’를 즐기는 우리가 있고, 우연히 만난 둘째 고양이, 천해가 낳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조금만 걸으면 고라니와 말, 꿩을 만날 수 있고, 조금만 더 나가면 귤 밭과 오름, 바다와 한라산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순 없지만, 덕분에 동시집 집필에 몰두할 수 있고, 공연을 쉬는 차에 언젠가 해보려던 삭발을 시도하게 됐다. 여유롭게 텃밭도 일구고, 주변 들판과 오름을 다니며 냉이, 달래도 캐고, 고비와 두릅 꺾어 데쳐 먹고, 무쳐 먹고, 전 부치고, 생전 처음 달래장도 만들어 먹으며 한껏 물오른 봄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다.

지금은 적은 돈으로 생활이 가능해 쉬고 있지만, 일을 가리지 않으니 필요하면 언제든 귤 밭에서 일을 하고, 말똥을 치우거나 관광지에서 근무하고, 벼룩시장을 열고, ‘바다지킴이’로 활동하며 돈을 벌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이다. 언제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우리는 계획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편이지만, 그 와중에 빼먹지 않고 연애 시작 전부터 꽤 규칙적으로 꾸준히 실천해 오는 일이 하나 있다.

명상하기.

이 마음 들여다보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알아 가고 있다. ‘나’의 실체는 마음이란 사실. 물질세계에서 몸을 이뤄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몸 자체도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니까 몸도 마음의 결과물인 셈이다. 마음이 모든 것이고,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

이 마음을 따라 올해에는 함께 새롭고, 재미난 일을 벌이기로 했다. 각자 해 왔던 문학과 공연, 미술, 연극 예술을 접목해 ‘노래하는 그림책’이라는 다원 예술 공연을 만들었는데, 감사히도 올 초 제주문화재단에 넣었던 계획서가 당선돼 지원을 받게 됐다. 또한 독립 출판사를 차릴 예정인데, 첫 책으로 내가 쓰고 그린 동시집을 출판할 계획이다.

물론 자금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이 아직 미비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마음이 순수한 의도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의 출판사에서 첫 동시집을 출판할 것이고, 10월 10일쯤 노래하는 그림책 공연도 열게 될 것이다. 지금껏 그랬듯, 마음이 진짜 원하는 현실을 창조할 테니까.

 

 

다시 그가 묻는다.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사실 몸과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머리 입장에서는 자꾸 기존 정보와는 다른 데이터가 새로 들어와 잘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전에 비해 일을 하지 않으니 별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맘에 드는 곳에서 자연을 누리며 햇볕 쬐고, 나물 뜯고, 명상하고, 빵을 굽고, 노후에나 가능할 법한 호사스러운 시골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겠지. 그러나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응! 당연하지, 이번 생은 이렇게 살자. 우리 인생이니까, 우리 마음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