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시인 신동엽의 농경적 상상력

시인 신동엽의 농경적 상상력

 

김형수(시인)

 

 

1.

신동엽의 초기작 <향아>라는 시는 하나의 신파처럼 시작된다.

향아 너의 고운 얼굴 조석으로 우물가에 비최이던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

‘향아’를 호명하는 것도 고색창연하지만, 그 얼굴이 아침저녁으로 우물가에 비치던 때로 돌아가자는 말도 난감하기 그지없다. 사실은 이를 설명하는 데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시인의 생가 앞에 우물이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이 우물로 밥을 지었으므로 부엌일을 맡은 아낙네들이 아침저녁으로 꼭 물을 길러야 했다. 그래서 두레박질을 할 때면 얼굴이 수면에 비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체험은 수천 년 전부터 한국인의 감수성에 저장된 공통 기억의 토대였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게는 이런 표현이 정서적 동요를 안기기에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때와 지금의 집단 감성의 차이는 신동엽의 시 전편을 난해의 수렁으로 빠트린다. 예컨대 ‘향아’는 시인이 부산 전시연합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학교 앞 다방에서 일했던 미스 향이라는 종업원이었다. 도회를 선망하고 용모 단장을 지상의 목표로 삼았던 여성에게 한 문청이 들려주고 싶었던 주제는 둘째치고라도 그를 위해 예시했던 말들도 전하기가 쉽지 않다. “회올리는 무지갯빛 허울”의 ‘회올리는’은 ‘회오리처럼 말아 올라가는’ 용오름 모양을 뜻하고, “두레를 먹던”은 백중 때 마을 공동 일을 하고 나서 음식을 나눠먹는 광경을 묘사하며, “맨발을 벗고 콩바심하던”의 ‘콩바심’은 추수하는 일을 가리키되 구체적인 내용이 깊어서 풍속을 소개하는 그림책을 펼쳐도 이해시키기 힘들다.

지금 우리 시대가 신동엽의 유산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사실 중의 하나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인들에게 이미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껍데기는 가라”는 늘 과격하고 단호한 구호로 차용된다.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콩바심’을 해본 사람들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농부들이 콩을 추수하여 바로 먹는 것은 아니다. 들에서 거둬들인 것을 마당에 내놓고 도리깨질을 하여 알곡을 골라내느라 콩바심을 하는 정경은 평화롭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농경문화가 일과 놀이를 분리시키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때 일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의 운율로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하고 외치면서 도리깨질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동엽도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이 구절을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른다. 그렇다면 “껍데기는 가라”가 경직된 대치 선언을 단지 포고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것은 신동엽 시정신의 핵심에 속하는 ‘외경’과 ‘연민’의 심성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신동엽의 시적 감수성에는 이렇게 형언하기 어려운 대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광활함도 무거움도 그곳에서 나온다. 엄숙하지만 거칠어 보이는 <빛나는 눈동자>도 득도한 선각자의 고요한 준동을 묘사한 시이다.

검은 바람은/앞서 간 사람들의/쓸쓸한 혼을/갈갈이 찢어/꽃 풀무 치어오고

‘꽃 풀무’의 풀무는 공기를 분사하는 기구이다. 예전에는 주로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기 위하여 화덕에 공기를 불어넣을 때 이 기구를 썼다. 그래서 이 구절은 꽃잎이 찢어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앞서 간 사람들의 혼을 느끼는 장면이 된다. <보리밭>이라는 시도 공동의 생활체험이 깔려 있다.

건, 보리밭서 강의 물결 타고/거슬러 올라가던 꿈이었지//아무도 모를 무섬이었지/우리네 숨 가쁜 몸짓은

어릴 때 보리밭 이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나면 빈자리에 쓰러진 독새풀의 모습이 마치 홍수가 쓸고 지나간 강기슭 같은 느낌을 준다. 옛 사람들은 이런 표현의 행간에서 장엄하게 스쳐가는 민중의 풍속사를 상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뒷받침할 경험적 실감이 없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데생’의 차원이 아니라 ‘세계인식’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시대적 유격이 발생된다.

2.

우리 세대가 처음 문학을 접할 때 신동엽의 시적 태도는 저항적 순정이 크긴 하지만 세계사의 파동을 모르는 채 흙에 묻혀 사는 시골 농사꾼의 것으로 치부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산업화 이후의 세대들이 신동엽보다 김수영에 집착하는 것도 시적 탁월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신동엽이 제국주의의 위세에 눌려 사대적 태도에 빠지는 것을 비판한 구절을 공격적 민족주의의 틀에 가두기도 하고, 김수영이 언급한 쇼비니즘에의 경도를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동엽을 좀 더 열심히 읽다보면 그 같은 편견과 실체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4.19적 상황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시위대가 등장한 효자동 풍경과 터키학생운동, 알제리 해방운동을 한 눈으로 꿰어가는 제3세계적 국제 감각을 지닌, 당대 유일의 시인이 신동엽이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시에서 ‘노동자’라는 표현이 최초로 언급된 시로 신동엽의 <종로5가>를 꼽는다. 그는 심화되어 가는 자본주의적 현실을 일찍부터 고민했으며, 굴욕적 한일회담을 보면서 거의 실시간으로 성토했다. 더욱이 현대과학에 대한 소양과 상상력은 경악스러운 바가 없지 않아서 4.19 이듬해 그러니까 1961년 <<자유문학>>에 발표한 <시인정신론>에서 산업사회의 분업화가 미구에 ‘손톱 발톱 미장(美裝) 전문 연구의’를 출현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음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성 노동까지 대행할 것을 예측한 대목이다.

마침내 인간은 아마도 지구를 벗어날 것이며, 지구의 파괴를 기억할 것이며, 인조 두뇌를 만들어 자동 시작(詩作)을 희롱할 것이다. (신동엽, <시인정신론>)

이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이미 ‘인류세’의 고민을 시작한 자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신동엽의 농경적 상상력은 순전히 고의에 의한 것이며, 그가 정확하게, 농자(農者)를 천하의 대본(大本)으로 여긴 점은 일정한 사상과 가치체계를 전제하는 것이 된다. 가령, 신동엽이 “사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노래한 것도 민중의 역사 행위가 마치 대지 위에서 농사꾼이 쟁기질하는 모습과 같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 ‘갈아엎는’을 ‘분쇄해버리는’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농사의 태반이 천수답이었으니 농민들은 어린아이든 씨앗이든 누가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땅 위에서 저절로 자란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천수답은 하늘이 내리는 비로 농사를 짓는 논을 가리킨다. 비와 바람과 햇살이 대지의 식물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으니, 하늘은 곡식을 기르고 농사꾼은 이를 잡초와 격리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농사의 본령은 사람이 수확할 곡물과 경쟁하는 잡초를 두렁 밖으로 내쫓는 일이 된다. 그런데 이는 농사꾼에게 결코 쉬운 노동이 아니다. 잡초는 자갈 틈에서도 자라고, 아무리 뽑아도 다시 자란다. 그래서 이 한없이 난망한 일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책이 땅을 갈아엎는 일이다. 그렇다면 ‘4월’은 논밭의 흙을 뒤엎어서 곡식이 자랄 자리를 다시 만드는 달이니, 역사의 한 시기에도 세상의 농사꾼(신동엽은 이를 전경인이라 불렀다)들이 용도 폐기된 땅거죽(상층구조)을 뒤집어 곱게 재영토화 하는 달이라는 농경적 기표에 속한다.

신동엽은 4.19를 단순히 부정선거에 항의하고 학원사찰에 반대하는 차원의 정치적 기념비로 보지 않고 유장한 민족사의 영토를 재구성할 ‘어떤 쟁기질’로 보았다. 그의 눈길이 언제나 국면적 주제에 머물지 않고 보다 원대하게 계절이동을 하는 대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나는 원시(遠視). 그래서 당신은 멀리 있어야

잘 생각난다 일렀더니, 싫어도 당신은 끄덕이시더라.

(신동엽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제3화)

그렇다. 당신은 멀리 있어야 잘 보인다. 당장 코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자는 인간관계 내부의 부조리에 사로잡힐 뿐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없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려면 그의 ‘전경인 사상’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전경인(全耕人)은 <사월은 갈아엎는 달>의 ‘갈아엎는 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쟁기꾼’을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설정하는 신동엽 고유의 개념어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갈아엎는 자’를 우리가 예전에 떠나온 자리에 두고 읽는 게 아니라 미래에 귀의해야 할 자리에 놓고 읽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는 존재의 본래 양식, 즉 씨앗 같은 상태를 원수성(原數性) 세계, 또 존재의 본래 양식이 자연을 떠나 문명 속에서 변모한 양태를 차수성(次數性) 세계, 그것이 다시 자연의 섭리 속으로 귀의하여 또 다른 씨앗이 될 열매가 된 상태를 귀수성(歸數性) 세계라고 말한다. 여기서 귀수성 세계에 들어선 자의 이름인 전경인은 산업화, 직업의 분화, 물질숭배의 시대상 속에서 자기의 대지를 파괴당한 인격체들을 위하여 인간의 문명과 역사의 논밭을 다시 쟁기질하는 역할을 한다. 신동엽은 이를 시인의 사명으로 보았고, 근래의 학자들은 이게 융‧복합적 인간형이라고 말한다.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칭송되는 ‘외경’과 ‘연민’의 감정은 바로 이 전경인에게 요구되는 덕성이다. 세상은 늘 눈보라 사이에서 별빛이 빛나는 광경처럼 ‘찰나’와 ‘영원’이 뒤엉켜 있으니 우리는 외경과 연민을 잃으면 생명적이고 영성적인 세계관을 지탱할 수 없다.

3.

남한 최초의 저항시인이자 혁명시인으로 알려진 신동엽이 일견 종교인 같은 풍모로 문명 비판에 몰두했다는 것은 자못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는 당대 비평가들에게 주로 사회 참여적 문학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신동엽의 주된 관심이 민주화투쟁이나 정치변혁 같은 문제보다 근대문명의 지평을 거꾸로 향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처음 지적한 이는 김종철이다. 그는 <신동엽의 도가적 상상력>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하나의 전체적인 생활방식으로서 오늘의 문명이 왜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김종철, <신동엽의 도가적 상상력>)

핵심은 이것이다. 신동엽의 문학사상을 집약한 <시인정신론>은 과도할 만큼 경도된 ‘반(反)근대론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앞세운 ‘원시반본’의 언어들, 즉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향아>)와 같은 ‘근대 비판’을 ‘근대성의 결여’로 읽는 것은 비만 때문에 단식하는 자를 영양실조로 진단하는 것과 같다.

어쩌면 신동엽에게는 ‘근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적절치 않은 일인지 모른다. 근대는 사실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대를 지목하는 낱말이지만 신동엽이 저항하고자 한 것은 가까운 시대 자체가 아니라 세계의 파편화를 향해 일방으로 치닫고 있는 ‘산업문명’이었다. 왜냐하면 인류가 이 길을 이대로 간다면 온 세계가 ‘맹목 기능자’의 천지로 변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맹목 기능자란 삶의 총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업종의 일만 잘하는 헛똑똑이를 지칭하는데, 서양에서도 밀란 쿤데라 같은 작가들은 <<소설의 기술>>에서 이를 ‘전문화된 분야들의 동굴’에 갇혀 사는 현대인의 특성으로 보고, 여기에서 기인한 증상으로서 ‘존재의 망각’ 현상을 든다. 물론 소설이 이와 맞서서 인간사회가 더 이상 존재를 망각하지 않도록 끝없이 삶의 새로운 측면을 발굴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신동엽과 밀란 쿤데라가 같은 주장을 펼쳤다는 말은 아니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문제를 중심에 두지만 신동엽은 대지의 운명을 중시했던 까닭이다.

어쨌든, 신동엽의 <시인정신론>은 근대문명 속에서 끝없이 형해화되는 세계를 개탄한다. “흡사 발사된 산탄과 같이 공중으로 흩뿌려진 현대의 문명 파편”을 아무리 추적해도 거기에서 온전한 실체를 찾을 길은 없다. 심지어는 이런 말도 한다.

문명인의 고향은 대지가 아니다. 그들의 출생은 허공 속에서 시종(始終)했다. 전복 등에 소라가 붙고, 소라 등엔 더 작은 조개가 붙어 모르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가듯, 그들의 호적은 7천 년 축적된 조형문화적 부피와 인간 상호관계의 허구스런 언어 계층 위에 기록되어 오고 있다.(신동엽, <시인정신론>)

이렇게 근거지를 잃고 기생(寄生)의 연대기를 쌓아가는 중생들, 그리하여 “인구의 수효보다도 많은 문명 계층의 실내마다 범람하고 있는 불안, 공포, 전제, 부도덕, 파멸”의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현생인류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신동엽의 표현을 빌면 그들이 사는 곳은 대지가 아니라 ‘거품집’이다. 종일 파도를 쳐야 하는 것이 바다의 일일지라도 포말이 바다의 실체인 것은 아니다. 파도는 어쩌면 바다에 찍힌 도장 즉 해인(海印)에 불과한 것이다. 그곳에서 한 번 부서진 세계가 양산하는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노고를 그는 “벌집처럼 구멍 난 포대자루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들의 몸으로 안간힘 쓰며 덮어가려는 늙은 역사의 발자취”라고 표현한다. 과도한 이성숭배자들이 이를 미개한 주술처럼 여길지라도 어쩔 수 없이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리는 별 – 물질로 만들어졌다.” 지금 인류가 겪는 아비규환은 자기가 속해 있는 별의 운명으로부터 연대감이 단절된 자들의 몫이다. 그 때문에 신동엽은 애써 상기시킨다.

봄, 여름, 가을이 있고 유년 장년 노년이 있듯이 인종에게도 태허(太虛) 다음 봄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여름의 무성이 있었을 것이고, 가을의 귀의가 있을 것이다.(신동엽, <시인정신론>)

마치 가을 들판의 농부들처럼 저녁 빛 속에서 다시 갈 길을 찾자 하고 외치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되어야 할 것이 그가 농경적 상상력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는 현대문명이 야기한 ‘존재의 망각’ 현상의 원인을 농경문화의 종결이 가져다주는 대지 체험의 상실로 본다. 그로 인해 발생한 가장 뼈아픈 결손은 영성의 소멸일 것이다. 인간이 농업을 붙들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대지와의 연대감이 살아 있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네트워크가 열악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현대인들은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기 쉬우나 농부는 방안에 앉아서도 기러기가 나는 것을 알고, 외양간의 가축들과도 우정을 나누며, 들판의 곡식과 대화도 한다. 그 외딴곳 한 모퉁이에 서서 다음날 펼쳐질 날씨를 귀신 같이 아는 것을 영성적 소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동엽은 ‘산업적 근대’가 아니라 ‘농경적 근대’를 꿈꾸었다. 이렇게 말할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인류가 이룬 현대시의 지도 안에서 신동엽이 위치하는 지점일 것이다. 그의 시 정신이 봉건적인 상태로부터 한없이 벗어나 있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상쟁’하는 세계를 ‘상생’하는 세계로, 경직된 권력들이 쟁투하는 실존의 경기장을 연성(軟性)적인 문화의 힘이 질서를 잡는 장소로 바꾸려는 방법론으로서 <좋은 언어>를 선택했다는 점인데, 이는 얼마간 현대시의 특징들과 갈등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가령,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한길사 간)는 현대시가 ‘불가해함’과 ‘매혹’의 만남으로 이룬 ‘불협화’의 긴장과 ‘비규범성’을 특질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언급한 현대시의 개척자들 사이에 세워도 괜찮은 이름은 어떻게 봐도 신동엽이 아니라 김수영일 것이다. 김수영은 근대 유럽의 시인들이 확보한 거의 모든 자질을 습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동엽은 선행 세대의 규범이 탈색되지 않은 육중한 낱말들을 자주 등판시키거나 과도한 심정의 언어를 남발하는 흠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세련미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이들의 대열에 신동엽은 결코 합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오히려 그를 위해 언어 세공에 몰두하는 이들을 ‘정신 기술자’로 보고 그들이 대지와의 영적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는 것을 경고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젖혀두고 애오라지 인간사회 내부의 교통만 중시하는 것이 소위 ‘근대’요 ‘현대’를 추구하는 ‘모던’의 태도였던 까닭이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신동엽은 농경체험의 상실이 가져다주는 ‘대지적 감수성의 결여’에 두었다. 이것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를 가장 쉽게 파악하는 길은 역시 김수영과 비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신동엽이 등단한 이후 가장 존경했던 선배는 김수영이었다. 김수영도 신동엽을 총애하여 무명의 신인을 일약 1960년대의 대표시인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미‧일‧한 자본주의 방어체제가 만들어지던 1960년대 중반에 ‘굴욕적 한일회담’을 반대하기 위해 글쓰기로 전투적 저항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한 것도 김수영과 신동엽이었다. 그런데 김수영이 근대적 자의식이 치열한 시인으로서 감상주의,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고 끝없이 현실과 마찰하면서 성찰적 이성을 가동시킨 지식인이었다면, 신동엽은 서구적 근대에 반발하고 토착성을 추구하며, 근대에 종사한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대지의 역사의식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신동엽의 ‘향기로운 흙가슴’ 같은 신파를 김수영은 닭살이 돋아서 도저히 입에 올릴 수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신동엽의 관심은 전혀 다른 문제로 절실했으니 자신의 생각을 바꿀 확률이 전무했다.

신동엽의 정신적 거점은 동학이고, 동학 서사는 부득불 최제우를 기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신동엽은 이를 더 먼 과거에게서 더 먼 미래에게로 그 지평을 한껏 확장한다. 그리하여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의 양잿물, 피혁점, 구리개약방 같은 ‘존재와 시간’에 대한 맥락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으로 고구려 같은 과거를 거슬러 오르는 역사적 기억의 연결이 불가능했던 것과 달리 신동엽은 한국문학사에 가위 독보적인 업적 하나를 남긴다. 그는 근대에 종사한 누구도 가져오지 못한 우리의 ‘대지의 역사’를 분단시대의 문학적 영토로 설정하는 데 성공한다. 아무래도 김수영에게서 그 같은 시간의 단절이 생기는 원인은 모던한 영혼들에게서 보이는 ‘대지와 일체화된 토착성의 결여’에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신동엽은 대지를 가진 자의 장엄함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신동엽이 애써 농본적 태도를 고집하고자 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섣부른 추정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곳을 향하여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듯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놀랍게도 먼저 화해를 시도하는 쪽은 김수영이다. 본시 <달나라의 장난>을 바라보던 김수영이 자신의 문화전통에 눈을 뜨는 <거대한 뿌리>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신동엽을 발견한 이후부터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신동엽의 길이 보편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시에서 대지가 소멸해가는 현상은 어느 새 각성을 촉구할 지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최근의 시는 생명활동의 문법으로부터 더욱 분열적이 되고 일상적 감각으로 해석하기도 더욱 어려워져서 신동엽의 정신은 더욱 머나먼 문단유산이 되었다.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염무웅은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한티재 간)에서 “이제 우리의 일상적 감각이 인지하는 세계를 넘어서는 전혀 다른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한다. 요지인즉, 옛날에는 별을 보면서 인간의 운명을 점치거나 우주와 인간의 마음이 하나의 원리로 작동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육안으로 별을 보는 일은 천체물리학이 아니라 동화의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가시적으로 느끼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들의 총체가 아니다. 만져지면 존재하고 안 만져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존재들이 존재의 영역으로 진입해서 우리의 오관이 느끼지 못한 것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버린다. 그리하여 시각적 경험이라든가 감각의 세계 전체가 인류가 생겨난 뒤 수십만 년 동안 겪어오면서 무의식 속에 축적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질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은 재고의 여지없이 여기에 의존한다. 그래서 염무웅은 말한다.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양자나 전자, 더 나아가 퀴크나 힉스 같은 초소입자의 존재를 특수한 실험방법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입증은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그런 존재를 짐작조차 할 수 없죠. 현대시의 세계도 분명히 근거가 있는 건데, 그 동안 길들여진 우리의 감각으로는 근거가 인지되지 않고 수용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염무웅, <<문학과의 동행>>)

이렇게 낯선 곳을 질주한 끝에 인류는 지금 전대미문의 난제 앞에 서 있다. 유사 이래 처음 겪는 대기변동, 기후변화와 신종 전염병 등의 재앙 앞에서 각 대륙이 드러내는 괴기스러운 양상들은 이제 인류가 스스로의 문명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자연의 이치로부터 분리될 것을 염려하기 시작한 것은 컴퓨터, 자동차, 에어컨이 발명되기 전에도 있었다. 언젠가 종이책이 출현하면서 ‘기억의 외주화’ 시대가 도래할 때 소크라테스가 저항한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삶에서 기억의 저장고에 있어야 할 것을 문자를 이용하여 파피루스에 외주화하는 것이 지혜를 잃게 한다고 경고했다. 그것이 심화되어 인간이 지식의 범위를 특정 규모 이상으로 넓히게 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즉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걱정했던 문제들은 아날로그 문화의 힘으로 일정하게 제어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 칩에 삶의 지혜를 외주화하고, 그로부터 발생할 위험을 스스로 통제할 범위를 크게 넘어버렸다. 그러면서 더욱 염려가 되는 것은 이를 가속화시키는 디지털 기기들이 도덕적 상상력을 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신동엽이 <시인정신론>에서 예측한 ‘인조 두뇌’가 ‘시를 희롱하는’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을 신동엽에게 보여준다면 그는 더욱 큰소리로 외칠 것이다. 문명은 대지를 이탈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 아니라 ‘시업가(詩業家)’라고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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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시인이며 소설가, 평론가.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 1,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흩어진 중심>> 등과 <<문익환평전>> <<소태산평전>>을 출간했으며 작가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