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시속 1km의 순례

시속 1km의 순례

 

김한석 (KBS PD)

 

 

촬영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작은 연못 수생 식물을 수면 높이로 근접 촬영을 하고 있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렌즈 앞에서 산란을 하는, 인위적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장면을 촬영하게 된다든지 항공 촬영 중 주유소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뜻밖의 사건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것은 수 년 전 필자가 인도 라다크 지역에서 촬영을 할 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평균 고도 3,000m 이상의 인도 라다크.

이곳은 티베트 불교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인도에 속하지만 티베트 문화를 갖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티베트 정부가 있는 곳이다. 또한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로도 잘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기후가 좋은 6~9월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라다크의 도시들은 활기를 띌 정도다.

필자는 이곳에서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인 드루크파에 대한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마침 시기가 겨울이라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많은 가게와 식당의 주인들은 문을 닫고 산 아래로 내려가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올라오는 터였다.

그런 상황이라 식사는 레(Leh) 시내의 작은 식당에서 간단한 현지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티베트식 만두, 모모와 뚝바(한국으로 치면 수제비 같은 전통 음식)로 허기와 추위를 달래던 중 식당 창밖으로 진귀한 모습을 보게 됐다.

‘차마고도’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 봤던 오체투지였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필자는 안내해 주던 현지인에게 호기심을 던져 봤다.

“내일을 위해 아주 먼 곳에서부터 이곳 레(Leh)까지 오는 사람들입니다.” 현지인이 답했다.

 

 

내일은 티벳력으로 정월 대보름이라고 한다. 매년 이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처가 처음 설법한 날인 초전법륜일(티베트에서는 초전법륜일이 티벳력 6월 4일인데 라다크에서는 1월 15일을 따르고 있다.)을 기린다. 라다크의 주민들은 모든 생명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일을 수백 년 동안 이렇게 해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을과 수많은 생명들과 라다크 전체를 위해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예불이 끝나면 순례가 시작된다. 순례의 모습은 온몸을 땅에 붙여 기도하는 오체투지였다. 라다크 사람들은 이 순례를 ‘땅뽀촌아 고착’이라 부른다. 정월 보름을 뜻하는 ‘땅뽀촌아’와 오체투지를 뜻하는 ‘고착’으로 말 그대로 정월 대보름 오체투지였다. 천여 명의 사람들이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땅에 붙이고 기도하는 모습은 장관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함을 갖게 했고 무척이나 순수하고 엄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레 왕궁을 중심으로 주변의 불탑들을 지나며 3일간 1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순례한다. 그들의 기도 소리는 반복적이다.

“모든 생명들의 행복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중생의 법모이신 부처님께 삼보(三寶)로 귀의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인간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치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기도. 그들이 스스로에게 허락한 속도는 시속 1km다. 보통 사람의 보행 속도가 시속 3~4km인 것에 비하면 느리고 고단한 순례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의 삶은 이 길보다 더 고단하다.

라다크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척박한 산악 지형에서 주로 목축업 즉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풀과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 메마른 대지 위에서 힘겨운 삶을 조상 대대로 이어 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신앙과 믿음은 처절하리만큼 간절하다. 신 앞에 가장 낮은 자세로 기도하는 라다크 사람들을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그 모습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어서 어느 곳에서든 인간이 갈구하는 것은 결국 같지 않을까?’

순례의 행렬에도 순서가 있다. 종교적, 사회적 지도자가 앞장서고 그 뒤를 주민들이 따른다.

맨 앞줄에는 9살 때부터 67년 간 매년 이 순례를 해온 노인이 있었다. 일흔여덟의 순례자에게 이 길은 어떤 의미일까? “마음에서 몸에서 그리고 말로 나오는 내 자신의 모든 죄를 씻어 내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 65-7년째 매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자신한테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순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 진정한 자신이 서있는 곳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일일 것이다. 반면 노인의 기도가 67년 간 반복되는 이유는 욕망 앞에 다짐이 무너지고 세상의 유혹에 나약해지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은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세월만큼 번뇌를 쌓아 가는 일이라서 이 시속 1km의 순례는 세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얼마나 반복해야 기도가 끝이 나는 걸까? 추위와 가파른 오르막길, 흙먼지도 라다크 사람들의 기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길처럼 인생에도 수많은 오르막과 장애물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수없이 미끄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은 과정일 것이다. 삶이 그렇듯 순례길의 고난 앞에서 사람은 더욱 단단해진다. 고난 속에서 이 순례길의 끝을 고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인간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가듯이 이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순례 첫 날 기도를 시작한 그 곳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108배로 한 해가 무사하길 기원하며 순례를 마친다. 라다크 순례자들의 이마엔 대지의 징표가 선명했고 표정에는 평온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기도가 끝나면 이들은 다시 척박한 히말라야에서 혹독한 기후와 가난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이 오면 분명 사람들은 온몸을 던져 시속 1km의 순례에 또 다시 나설 것이다.